상생과 조화, 나눔과 협력의 '단짝'
젓가락으로 한중일 3국이 하나 되다
(청주=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젓가락은 2천 년 넘게 이어져 온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공통된 문화원형이다. 그 안에는 생명문화와 생명교육의 비밀이 숨어 있다. 젓가락은 짝의 문화, 나눔과 배려의 문화, 상생과 협력의 문화 상징이기도 하다.
충북 청주시는 3년 전부터 젓가락을 주인공 삼아 매년 축제를 개최한다. 젓가락의 미덕을 찬찬히 다시 살피며 생명문화의 미래를 새롭게 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동아시아의 2천 년 문화원형인 젓가락 속에 담겨 있는 짝의 문화, 나눔의 문화, 사랑의 문화, 상호 협력의 문화, 가락의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함께한다!"
화창하게 맑은 만추의 아침나절, 한중일 3국의 대표가 낭독한 '생명문화선언문'이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저 높은 창공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태양! 모듬북의 힘찬 장단이 쩌렁쩌렁 그 뒤를 따르는가 싶더니 하늘에선 비둘기 떼들이 군무하듯 훨훨 날아올랐다.
'2017 젓가락페스티벌'의 핵심 프로그램인 '젓가락의 날' 행사가 열린 11월 11일 오전 11시. 시간의 숫자들이 영락없이 젓가락을 빼닮은 이날 이 시각에 3국 대표들은 감동의 생명문화선언을 한 뒤 고운 한복 차림의 어린이들에게 생명젓가락을 정성스레 전달했다. 국경과 세대를 넘어 젓가락 문화가 전승됨을 상징하는 장면. 이어 어린이합창단이 '아리랑' '옹헤야' 등을 열창하고, 한국과 일본 전통타악연주단은 단독 공연과 합동 무대로 축제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윽고 하늘로 펄펄 날아오르는 오색의 종이 꽃가루들! 이 광경을 지켜본 참가자들은 "와!" 하고 탄성을 터뜨리며 깊은 감동을 나타냈다.
◇ 젓가락으로 만난 한중일 3국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 문화도시가 손잡고 정감을 함께 나눈 올해 젓가락페스티벌이 11월 10일부터 19일까지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에 있는 청주문화산업단지(옛 청주연초제조창) 일원에서 펼쳐졌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청주 젓가락페스티벌은 젓가락을 소재로 한 세계 유일의 축제마당. 2014년 이후 선정된 11개 한중일 동아시아문화도시가 초청된 올해는 일본 국제젓가락문화협회, 중국 상하이젓가락촉진회가 참가해 축제를 더욱 빛냈다.
이번 페스티벌은 '젓가락 특별전'을 비롯해 '생명문화 국제회의' '젓가락의 날' 행사 등으로 진행됐다.
첫날인 11월 10일 오후 문화산업단지 2층에서 개장된 젓가락특별전은 '삶의 향기'를 주제로 3천여 점의 젓가락은 물론 옹기, 사기, 유기 등을 두루 감상케 했다. 이와 함께 국내외 숟가락 아티스트 100명이 참여한 '숟가락 100인전', 음식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살피는 '우리집 가보전'이 나란히 열렸다.
앞서 개최된 '동아시아 생명문화'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에서는 한중일 3국의 문화도시 관계자와 젓가락문화 전문가들이 젓가락과 생명문화의 역사를 함께 탐색했다. 축제 이틀째 진행된 젓가락의 날 행사는 동아시아 젓가락장단 합동공연, 한중일 음식체험, 젓가락질 경연대회, 젓가락 만들기 체험 등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청주시가 젓가락에 본격 주목한 때는 2015년이었다. 중국 칭다오, 일본 니가타와 함께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된 청주시는 3국의 공통된 문화원형인 젓가락 콘텐츠를 지속가능한 글로벌 문화상품으로 특화하기 위해 11월 11일을 젓가락의 날로 선포하고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지난 8월에는 국내 최초의 젓가락연구소를 설립해 다양한 젓가락 콘텐츠 개발에 나섰다.
◇ '아슬아슬'…긴장과 환희의 젓가락질 경연
숨 막힐 정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문화산업단지 1층의 컨벤션홀 상상마루. 조그만 반상을 마주하고 앉은 어린이들은 사회자의 "준비! 시작!" 외침과 함께 약과 쌓기에 몰입했다. 주어진 시간은 딱 1분. 미니 약과를 젓가락으로 그릇에서 집어낸 뒤 상 위에 탑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경연이다. 도중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말짱 도루묵이어서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가슴 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젓가락의 날' 프로그램 중 하이라이트인 젓가락질 경연대회. 유아부, 초등부, 일반부, 가족부로 나뉘어 진행된 이 행사는 승부를 떠나 젓가락의 미덕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체험마당이기도 했다. 젓가락질을 잘하면 뇌 발달에 도움이 돼 창조적 생각과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우리나라의 올림픽 양궁 금메달 싹쓸이, 잇따른 세계 프로골프대회 우승, 국제기능올림픽 6연패, IT·반도체 강국으로의 부상 등 이면에는 젓가락의 힘이 숨어 있다는 게 정론이다.
"5! 4! 3! 2! 1!" 사회자가 남은 시간을 초 단위로 숨 가쁘게 카운트다운하자 경연대회장은 초조와 기대로 엇갈렸다. 모두 10개의 약과 탑을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려 1위로 예선을 무난히 통과한 최인영(7) 어린이는 "하나도 떨리지 않았어요. 그냥 하던 대로 했어요"라며 여유 있게 미소를 지었다.
"파이팅!" "천천히!" "집중! 집중!"을 외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탑 쌓기를 지켜보던 엄마 안상남(40) 씨도 "우리 인영이가 평소 실력대로 참 잘했어요! 참 잘했어!"라며 대견하다는 듯 아이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젓가락특별전은 동아시아의 문화원형이 된 젓가락과 식문화가 나라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전시는 '문화, 담다' '예술, 물들다' '세계, 품다' '삶, 젖다' '꿈, 나누다' 등 모두 5개 세션으로 구성됐다. 수저작가와 설치미술가 50여 명의 작품 500여 점 등 모두 3천 점의 작품을 완상할 수 있었다. 젓가락학교 코너는 '내 젓가락 만들기' 등 교육과 체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인천에서 왔다는 박종호(42)·전주미(40) 부부는 "오랜 역사의 생활도구임에도 젓가락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왔다. 세세히 보니 그 가치와 함께 예술미가 새롭게 다가온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멀리 제주에서 건너와 아들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본 김하영(52) 씨도 "젓가락 문화가 이처럼 다양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면서 "11월 11일은 더이상 '빼빼로 데이'가 아니에요. 젓가락 데이죠, 젓가락 데이!"라며 얼굴에 함박웃음을 올렸다.
'일본 젓가락의 방'에서 기자와 만난 우라타니 효고(浦谷兵剛) 국제젓가락문화협회 이사장은 "특별전을 통해 3국의 수저문화를 폭넓게 보고 이해하게 함으로써 문화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어 젓가락페스티벌의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부터 젓가락 문화의 세계화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청주시가 선구적으로 이를 축제화해 부럽고 고맙다"며 "한중일이 손잡고 젓가락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현재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 젓가락 문화의 시원과 분화
그렇다면 젓가락은 대체 무엇일까? 언제 생겨나 어떻게 분화해왔을까? 축제를 계기로 그 정체를 간단히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수저'라고 하면 '숟가락'부터 떠올리기 쉬우나 이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우르는 말이다. 원시인에게 숟가락이 손바닥이라면 젓가락은 손가락이었다. 물이나 국을 마실 때 손바닥을 이용하고 식량을 먹을 땐 손가락을 사용했는데 이게 숟가락과 젓가락이라는 도구를 낳게 했다. 즉 숟가락과 젓가락은 손바닥과 손가락의 연장선인 셈.
역사를 보면 숟가락이 훨씬 길다. 중국의 경우 서기전 10세기에서 6세기의 가요를 모은 '시경'에 숟가락이 나올 정도이나 젓가락은 춘추전국시대가 돼서야 기록에 등장한다. 국내에선 백제 무령왕릉에서 청동 젓가락이 출토되는데 이때에 이르러 숟가락과 젓가락이 '수저'로 만나 병용됐다고 할 수 있다.
젓가락은 경건한 제사의식과도 관련이 깊다. 제의가 지배층 중심으로 일상화하면서 신에게 공물을 바칠 때 제관이 손가락 대신 젓가락을 사용한 것. 지배층 위주의 젓가락 문화는 이후 서민들에게도 퍼졌으며 이는 국수가 중국의 서역에서 동방으로 전래된 시기와 일치한다. 젓가락 문화가 대륙과 바다를 건너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동남아로 확산된 것. 국내에서도 왕가와 양반가 중심으로 사용되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 서민층으로 확산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젓가락을 소재로 한 대표적 우리 문학작품이 최초의 월령체가인 고려가요 '동동'. '십이월 분디나무로 깎은, 아아 소반의 젓가락 같구나. 내 님 앞에 가지런히 놓았는데 손님이 가져다 뭅니다. 아으 동동다리'라고 노래한 '동동'은 꽃단장하고 연인에게 시집가려 했으나 다른 사람과 연을 맺게 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분디(산초)나무 젓가락에 빗대어 한탄하는 내용을 담았다.
젓가락은 한중일 사이에 저마다 차이를 보인다. 길이로 볼 때 중국 젓가락(구와이즈)이 가장 길고 일본 젓가락(하시)은 가장 짧다. 한국의 젓가락은 그 중간치에 해당한다.
중국 젓가락이 긴 이유는 넓은 식탁에 빙 둘러앉아 함께 먹는 두레반이 기본이어서 그런 것 같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 뼈를 발라낼 일이 없어 끝은 대체로 뭉툭하다. 반면에 좌식 1인상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젓가락은 삼국 중 가장 짧고 생선가시를 발라먹어야 하기에 끝이 뾰쪽하다. 한국의 밥상에선 밥 못지않게 국물도 중요한 만큼 숟가락과 젓가락이 짝꿍처럼 동등하게 사용된다는 점이 특징. 이는 숟가락보다 젓가락을 더 많이 쓰는 중국, 일본과 대비된다. 두 나라가 나무젓가락을 이용하고 한국은 쇠젓가락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 또한 눈길을 끈다.
젓가락은 단순히 먹는 도구에 그치지 않았다. '젓가락의 날' 행사의 타악 공연이 시사하듯, '젓가락 장단'은 북, 장구, 꽹과리 등 타악 연주의 근본 바탕이 됐던 것. 농악놀이 등 우리 문화의 저변에는 '흥'의 문화원형을 간직한 젓가락이 깔려 있다.
◇ "동아시아 넘어 세계로"…글로벌 콘텐츠화 박차
젓가락페스티벌의 주최 측인 청주시는 신봉동 백제고분군을 비롯해 이 지역에서 금속류의 다양한 수저 유물이 출토된 점을 들어 다른 지역보다 금속문화가 발달해 있었다며 젓가락 문화의 재조명과 발전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저 유물을 다량 소장한 대표적 공간은 국립청주박물관. 이곳을 비롯한 청주권에 모두 3천여 점의 수저 유물이 소장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사례가 청주박물관에 있는 제숙공처(齊肅公妻) 젓가락. 13세기로 추정되는 명암동 고려 무덤에서 발굴된 이 젓가락은 죽은 아들이 저승에서 배를 곯지 말라는 심정을 담아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 청주시는 1998년 제숙공의 아들 무덤이 발굴되면서 젓가락 문화가 국제적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글로벌 콘텐츠화에 시동을 걸었다.
이승훈 청주시장은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생명문화도시 청주와 청주의 젓가락이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고 젓가락 문화를 세계적 문화자원으로 발전시키도록 했다"고 말했다.
축제 개최장소인 첨단문화산업단지는 1946년 처음 문을 연 연초제조창 자리였다. 1999년 담배생산 중단으로 헐릴 위기에 처했던 이곳은 문화를 새롭게 낳으며 미래의 꿈을 키우는 문화공장으로 2009년 재탄생했다.
이곳 문화단지에서는 올해 젓가락페스티벌 기간에 세계 50개국 문화인들이 한데 모여 문화의 꽃을 피우고 평화와 공감의 목소리를 낸 '2017 세계문화대회'가 나란히 열려 축제 효과를 더욱 높였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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