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20년] 위기를 기회로 180도 바꾼 사람들

입력 2017-11-19 05:50  

[외환위기 20년] 위기를 기회로 180도 바꾼 사람들

셀트리온 서정진·테라로사 김용덕·이디야커피 문창기

실업자로 내몰렸지만 도전 멈추지 않아…인생의 '터닝포인트'

(서울=연합뉴스) 이유미 김잔디 기자 = 1997년 외환위기로 기업이 휘청이자 구조조정에 내몰린 실업자가 대거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평생직장' 개념이 부서지면서 많은 사람의 삶의 궤적이 180도 바뀌었다.

이때 위기를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삼은 경우도 적지 않다. 실업자로 내몰린 상황에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들은 그때를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 샐러리맨 신화서 바이오 신화로…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서정진(61) 셀트리온 회장은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인물이다.

1983년 삼성전기[009150]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서 회장은 한국생산성본부 등을 거쳐 1992년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눈에 들어 임원으로 파격 발탁됐다. 그러나 만 32세 대우그룹 최연소 임원이라는 '샐러리맨 신화'는 외환위기로 인해 7년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그가 약 3년 뒤 대우차의 옛 동료와 세운 회사가 셀트리온이다.

2000년대 초반 정보통신(IT) 벤처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지만, 서 회장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약품 수요 증가,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 만료 등으로 바이오의약품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업 초기에는 기술력 자체가 부족하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개발하며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고, 이제는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램시마를 성공적으로 출시해 세간의 불신을 덜어냈다.

램시마는 유럽에서 오리지널 의약품 시장의 40% 이상을 잠식하는 등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항암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 역시 유럽에서 허가받는 등 후속 파이프라인을 강화하는 추세다.

주가도 승승장구해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 제약 등 상장 계열사의 시가총액이 30조원을 돌파했다.

서 회장은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안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도전정신"이라며 "세상에 실패란 단어는 없으며 아직 성공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 은행원에서 커피사업가로…김용덕 테라로사 대표







김용덕(58) 대표는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20여년의 은행원 생활을 정리하고 커피 사업에 도전장을 내 성공한 인물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김 대표는 상고를 나와 남들이 '철밥통'이라고 부러워하는 은행에 취직했다. 조흥은행에서 21년간 성실히 일했지만, IMF 외환위기로 명예퇴직 바람이 불면서 1998년 사표를 던졌다.

당시 마흔 살이었던 그는 퇴직 후 1년간 미술 공부를 하고 배낭여행을 다니는 등 소일하며 평생 처음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된 시간이었다.

1999년 먹고 살기 위해 강원도 속초에 돈가스집을 차린 그는 후식으로 내놓는 커피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이후 커피를 제대로 알기 위해 문학, 역사, 철학책을 탐독하며 커피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고 커피 산업에 도전장을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2001년 12월 김 대표의 고향인 강릉에 처음 문을 연 테라로사 1호점이다.

'공장형 커피숍'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 테라로사는 커피의 생산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문 대표가 케냐, 르완다 등 전 세계 커피 농장을 발품 팔아 다니며 직접 구해온 커피 원두를 볶고 추출해 판매까지 한다.

최상급 원두를 사용한 스페셜티 커피의 맛이 뛰어난 데다 매장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고 독특한 분위기로 입소문이 나면서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현재 전국에 10여개 매장을 둔 테라로사는 지난해 2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김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커피가 운명적으로 다가왔다"며 "은행을 그만둔 것은 가장 큰 행운 중 하나였고, 커피를 만난 것은 나를 변화시킨 근본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 내실·상생 경영에 눈뜨다…문창기 이디야커피 대표

승승장구하는 국내 토종 커피 브랜드 '이디야커피'의 문창기(55) 대표도 IMF 외환위기를 정면으로 맞았던 인물이다.

은행원이었던 문 대표는 IMF 당시 10년간 근무했던 동화은행이 문을 닫자 삼성증권으로 옮겨 지점 투신팀장으로 2년간 근무했다.

이후 유레카벤처스라는 투자회사를 차려 운영하던 2004년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매장 수 80여개였던 이디야커피의 인수 제안이 들어왔고 문 대표가 직접 이디야커피를 인수한 것이다.

이디야커피는 문 대표의 인수 이후 성장을 거듭해 2013년 11월 국내 커피 업계 최초로 1천호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2천호점을 넘어섰다.





매장 수로 보면 이디야커피는 국내 커피전문점 중 독보적인 1위다. 이처럼 매장이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문 대표의 남다른 운영철학이 있었다.

이디야커피는 커피 한잔 가격을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외국계 커피의 60∼70% 수준으로 유지하며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이를 위해 화려한 대규모 매장보다는 중소 규모의 매장을 집중적으로 늘려 보증금과 임대료 부담을 낮췄고 인테리어 거품을 빼고 스타 마케팅도 배제했다.

가맹점주의 매출과 수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원칙 역시 다른 프랜차이즈와의 차별점이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업체가 매출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떼가는 것과 달리 이디야커피는 월 25만원의 정액 로열티만 내면 된다.

IMF 위기를 겪으며 몸담았던 은행의 파산을 목격한 문 대표가 내실 있는 경영, 가맹점주와의 상생 경영을 철칙으로 삼은 것이 이디야커피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jan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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