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년 반 만에 톱모델로…타임誌 선정 '영향력 있는 10대 30인'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188㎝의 훤칠한 키에 곱슬곱슬한 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얼핏 보기엔 유창한 영어 실력에 한국말은 서툰 외국인처럼 보이지만, 순대국밥과 김치찌개를 즐겨 먹고 영어에는 '젬병'인 천상 한국 사람이다.
작년 3월 데뷔한 한현민(16)은 국내 최초의 혼혈 흑인 패션모델이다. 데뷔 1년 반만인 지난 9월 국내 최대 패션 행사인 서울패션위크에서 20여 개 브랜드의 무대에 섰을 정도로 주목받는 톱모델로 부상했다. 이달 초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 명단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면서 국제적인 유명인사로도 인정받았다. 그의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는 5만명을 훌쩍 넘는다.
최근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한현민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최근 촬영 차 미국과 유럽에 갔는데 내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이 꽤 있어서 놀라긴 했다"고 말했다.
한현민은 한국인 어머니와 무역업을 하던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 꿈은 야구 선수. 하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탓에 꿈을 접어야 했다.
스스로 옷을 리폼해 입을 정도로 옷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 선배가 모델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모델의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모델이 되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집안 형편상 모델 아카데미에 다니는 것은 꿈도 못 꿨어요. 유튜브를 검색해 패션쇼 영상 속 모델들의 워킹을 보고 배웠죠. '프로필 사진 찍는 돈만 내면 밀라노의 큰 회사 오디션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요."
온라인 쇼핑몰의 피팅 모델을 하던 그가 패션쇼 무대에 데뷔하게 된 것은 SNS에 올린 사진 한 장 덕분이었다. 현 소속사인 SF엔터테인먼트의 윤범 대표가 우연히 이 사진을 보고 그에게 연락해 왔고, 이태원 거리 한복판에서 워킹 테스트를 한 뒤 곧바로 계약했다. 계약 2주 뒤에는 한상혁 디자이너의 서울패션위크 오프닝 무대에서 신고식을 치렀고, 이후 1년간 60여 차례 패션쇼 무대에 섰다.
"어릴 적부터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아서 남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두려워했어요. 처음 패션쇼 무대에 설 때도 엄청 떨리고 긴장했죠. 모델 활동을 하면서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게 된 것 같아요. 이젠 오히려 남들의 시선을 즐기죠. 모델이라는 직업이 내 인생을 바꿔줬고, 차별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그는 어릴 적 놀림당했던 피부색이 모델로서는 오히려 경쟁력이 됐다며 "하지만 튄다는 것 때문에 나를 모델로 안 쓰는 사람들도 있어서 단점이기도 하다. 피부색을 떠나 한현민만의 매력을 만드는 게 나의 숙제"라고 말했다.
그는 패션계 이외의 분야에서도 다양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정부의 '다문화 인식개선 홍보대사'로 선정돼 활동 중이며, 한복진흥센터의 한복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BBC에서는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예정이며, 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12월 방송 예정인 tvN의 '나의 영어 사춘기'를 촬영 중이다. 바쁜 날은 스쿠터를 타고 다녀야 할 정도로 스케줄이 빠듯하다.
모델로서 그의 목표는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것. 이를 위해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영어를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서 다른 식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는데 제가 아버지와 대화할 때는 어머니가 통역해 주실 정도로 영어와 담을 쌓고 지내왔어요. 모델일 시작 하면서 영어 공부 안 했던 걸 후회하게 됐죠. 이제 아버지와 조금은 대화할 수 있어요."
그는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으면서 "앞으로 더 성공해서 다문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는 게 장기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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