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함께 어울리는 장소…사회 변화에 맞춰갈 것"

입력 2017-11-20 07:30   수정 2017-11-20 09:24

"박물관은 함께 어울리는 장소…사회 변화에 맞춰갈 것"

취임 4개월 맞은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인터뷰

"장기적으로 보존과학센터·어린이박물관 건물 설립 추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박물관이 보물을 모아두고 공부를 시키는 곳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는 사회 변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따라간 느낌이 있어요. 그러나 변화에 느리게 대처하면 박물관 자체가 (박제화된) 박물관이 될 겁니다."

지난 7월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이 된 배기동 관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이라고 하지만, 발달한 기술이 아직은 박물관에 스며들지 않았다"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박물관 철학을 털어놨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박물관에서 유물 정리하는 일로 박물관과 인연을 맺은 배 관장은 한양대박물관과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관장을 지냈다. 고고학자로 40년 넘게 살아온 그에게 박물관은 전공 영역 중 하나였다.

배 관장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 박물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가 직원들과 함께 고민해 제시한 캐치프레이즈가 '따뜻한 친구, 함께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인간적인 온기를 느낄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정서를 공유하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배 관장은 "온라인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한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것의 의미가 커졌다"며 "누구나 함께 놀고 생각하는 장소이자 정선되고 아름다운 공간인 박물관이 미래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치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인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파리 시민 사이의 관계는 내국인 방문객이 많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의 관계와는 다르다"면서 "더 많은 국민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휴게실과 사색하며 거닐 수 있는 산책로를 확장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는 소속박물관도 각 지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오래된 건물을 차례차례 개축하거나 보수하고 대표 유물을 설정해 홍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생활문화의 일부가 돼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박물관을 자주 찾아오는 사람을 위한 콘텐츠를 주로 제공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마케팅 활동을 펼쳐서라도 박물관과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을 끌어와야 합니다."






배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릴 전시 계획도 소개했다. 내년 전시 중에서는 12월에 시작할 예정인 '대고려전'이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신라는 고분에서 나온 금관, 조선은 서울에 있는 궁궐로 우리와 친숙하지만 고려는 남한에 유물이 많지 않아서인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서 "개방적이고 국제적이었던 고려를 새롭게 인식할 시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금속활자, 대장경, 청자가 고려 사회에 퍼져 있던 창의성의 증거라면서 "단군조선을 한민족 역사에 편입하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한 나라가 고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고려전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려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하는 전시다. 배 관장은 남북 관계가 좋지 않지만, 북한에 있는 고려 유물을 들여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그는 "유네스코나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할까 고민하고 있다"며 "지금은 꿈만 꾸는 단계이지만, 서울과 평양에서 순회전을 개최한다면 남북 교류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중일 국립박물관이 함께 여는 '동아시아 호랑이 미술'전을 소개하면서 평창의 눈과 어울리는 백호(白虎)가 들어간 별도의 포스터를 만들어 세계의 박물관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배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발전하려면 장기적으로는 보존과학센터와 어린이박물관을 위한 별도의 건물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는 "보존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유물의 콘텐츠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됐다"며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떤 유물이라도 부서지지 않게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독립된 건물의 보존과학센터가 생기면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보존처리 담당 직원을 초대해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세계유산 보존에 기여하고 문화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배 관장은 성인과 어린이 관람객의 동선 분리를 위해 어린이박물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애들은 애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박물관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며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공원의 일부이고, 공원에 오는 사람 중에는 가족이 많기 때문에 어린이를 위한 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물관에서는 '뛰지 마라', '떠들지 마라' 같은 부정적 표현을 쓰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어린이들이 문화유산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전용 공간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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