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의 최대 시련…곧 독일정치의 총체적 딜레마

입력 2017-11-20 15:05  

메르켈의 최대 시련…곧 독일정치의 총체적 딜레마

재선거 가능성도…"문제는 정당구도 별로 안 바뀔 거라는 점"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일까.

안정적으로만 보이던 집권 13년 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총리직 4연임에 빨간불이 켜지고 연립정치의 미학을 각국에 협치 모델로 선사해온 독일 정당정치 시스템이 덩달아 누란의 위기에 몰렸다.

직접적 발단은 19일(현지시간) 친기업 자유주의 정당인 자유민주당의 차기 연정 협상 결렬 선언이다. 자민당의 결렬 공표로 차기 연정 협상을 주도한 메르켈의 다수 기독민주당ㆍ기독사회당 연합은 또 다른 협상 파트너인 녹색당과 함께 허망한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이끈 근본 배경에는 반(反) 난민ㆍ반이슬람 강령을 앞세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역대 첫 연방의회 진출이 자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AfD는 지난 9월 총선에서 13% 가까운 득표율을 올리며 독일 정당체제를 '균열적 다당제'로 확연히 바꿔놨지만, 어느 정당에도 연정 파트너가 되지 못하는 기형적 구도를 가져왔다.

정당 득표율에 정비례하는 의석배분 선거제도를 가져 여러 나라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독일이지만 13%가량의 유권자 의사가 애초 정권 참여에서 배제되는 역설이 연출된 것도 이에 맞물려 곱씹을 대목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환경 아래 지금껏 지속한 연정 협상은 메르켈의 집권 연장 야망과 녹색당의 정책적 유연함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여곡절은 겪을지라도 결국에는 타결을 보리라는 전망이 없지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 그런 낙관은 일단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속단하긴 이르나 협상 결렬 이후 가능한 몇 가지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도 저도 마땅찮은 옵션이라는 관측이 독일 정치권에 큰 딜레마를 안기는 형국이다.




AFP 통신은 20일 이와 관련해 냉각기 이후 재협상, 기민당ㆍ기사당 연합과 사회민주당 간 새로운 대연정 협상, 소수정부 구성, 재선거 등 4가지 선택 가능한 경우의 수를 나열했다.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그러나 냉각기 이후 재협상에 대해선 특별한 해설을 삼간 채 먼저 대연정 협상 카드에 대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한 사민당이 선거 직후 "야당을 해라"라는 것이 유권자의 뜻이라고 밝힌 데 이어 최근까지 랄프 슈테크너 사민당 부당수가 "그 입장에 변함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 주된 이유로 제시됐다. 이에 더해 "재선거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라는 마르틴 슐츠 당수의 견해 역시 대연정 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SZ는 소수정부 구성도 난망한 시나리오로 분류했다. 절대 과반 의석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정부를 꾸리는 독일정치의 오랜 전통과 역대 한차례도 소수정부가 없었던 점, 선거 직후 "안정적 정부를 만들겠다"고 공표한 메르켈 총리의 확약이 이 선택을 점치기 어렵게 하는 핵심 근거로 소개됐다.

나머지 재선거 시나리오에 대해선 대전제가 "의회해산"이라고 SZ는 지적했다. 또한, 그러려면 과거 정부의 전례로 미뤄 현직 총리가 신임투표를 밟는 것이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경로라고 신문은 전했다.

독일 정치사를 훑어보면 총리가 연방의회(분데스타크)에 자신의 신임투표를 부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불신임을 받아서 대통령이 권한을 가진 의회해산이 단행된 사례가 세 차례 있다.

사민당 빌리 브란트 총리 재임 시절이던 1972년 9월, 기민당 헬무트 콜 총리 때인 1982년 12월,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집권기 2005년 7월 신임투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2005년 7월 신임투표에선 슈뢰더가 불신임을 받아 조기총선이 치러졌고 그 선거 결과는 기민당 메르켈 장수 총리 시대를 연 것으로 유명하다.

SZ는 하지만 메르켈은 9월 총선에 따른 새로운 정부의 총리가 아니라 과도 정권기 현직 총리이기 때문에 이 옵션을 선택하길 꺼린다고 짚었다. 그러고는, 기본법(헌법) 63조 규정에 따라 대통령이 제안한 의회의 총리 선출 절차를 거친 이후 의회해산 여부를 대통령이 최종 판단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63조는 "총리는 대통령 제청으로 의회가 토론 없이 뽑고 '의회 재적 의원 과반수'로 선출되며 선출된 이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청된 이가 선출되지 않으면 의회는 투표 후 14일 안에 '재적 의원 과반수'로 총리를 뽑을 수 있고 선출이 이 기간 내 이뤄지지 않으면 지체 없이 새로운 투표가 실시되고 최다득표자가 선출된다", "선출된 자가 '의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표를 얻은 때에는 대통령은 선거 후 7일 안에 그를 임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반수를 얻지 못한 때에는 대통령은 7일 안에 그를 임명하거나 의회를 해산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사민당 소속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에 대해서, 이 규정에 더해 "의회가 해산된 경우에는 60일 이내에 총선을 실시한다"라는 기본법 39조를 적용하여 정국을 수습할 수 있다고 SZ는 분석했다.

SZ는 하지만, 현 상황을 보면 그런 과정을 거쳐 재선거를 치른다 해도 의회 내 역학 구도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며 독일 정치권의 딜레마를 짚었다.

un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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