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 공조도 염두 둔 포석…북·미 대화 가능성 일단 낮아질듯
'기대 못 미친' 中 대북특사도 전격 재지정에 영향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에 재지정한 것은 대북 압박을 최고 수위로 바짝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재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9월 중순 이후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60일 넘게 중단하고 있지만, 북핵·미사일 위기 해소를 위한 전향적인 변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강력한 추가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조치로 북한의 도발 중단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달 초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무르익는 듯했던 북미 간 대화 가능성은 일단 줄어들게 됐다. 나아가 북한이 이에 반발해 추가 도발에 나설 경우 상황은 심각해진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 재지정을 놓고 그 의미를 명확히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각료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 작전의 일환"이라고 직접 설명했다.
백악관 안보사령탑인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2일 아시아 순방 관련 브리핑에서 "트럼프 내각은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를 전체적인 대북 전략의 일부로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무역 제한과 대외원조 금지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국제사회로부터 고강도의 제재를 받고 있어 실효성은 별반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9년 만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고 나선 것은 상징적 의미에 방점을 두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잔악성과 비도덕성을 낙인찍어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과 제재 강도를 더 올리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정권을 향해 "살인 정권"이라고 직격했다.
김정남 암살과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이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라는 미 의회의 요구가 갈수록 커졌던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강력한 대북 압박을 가하려면 의회의 입법 공조가 필수적이다.
주미 대사관 관계자는 "미 의회의 거듭된 압박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신호를 발신할 기회와 시간을 줬지만, 북한의 태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대북 압박 기조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집권 초반부터 검토한 것은 사실이나 이달 초 아시아 순방 당시 "김정은과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며 대화·협상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던 최근의 기류와는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에는 무엇보다 중국 대북특사의 '빈손' 귀국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트위터에서 중국의 대북특사 파견에 대해 "큰 움직임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자"며 상당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쑹타오(宋濤) 특사가 방북에서 김정은을 직접 면담했는지 여부가 불투명할 정도로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면담했다 하더라도 아시아 순방 기간 미·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던 내용들이 거부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압박·제재 강도를 더 높여 북한을 대화·협상으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됐고, 그 결과가 전격적인 대북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귀결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순방에서도 확인했듯 미국이 '군사옵션' 등의 초강경 카드를 다시 전면에서 거론하기엔 안팎의 환경이 쉽잖은 상황이다. 제재와 압박을 통한 대북 고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결국 북한이 협상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최적의 방향이라는 게 워싱턴의 시각이다. 그 과정의 한 단계로 트럼프 대통령이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결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k02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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