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트추진연구소서 활약한 여성들 다룬 '로켓 걸스'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신간 '로켓 걸스'(알마 펴냄)를 넘기다 보면 흑백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예스러운 헤어스타일의 여성들이 저마다 책상 하나씩을 차지한 채 큼지막하게 생긴 기계와 씨름 중인 모습이다.
타자수인가 싶은 이들은 195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항공우주국(나사·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근무하던 과학기술자들이다. 이들 앞에 놓인 기계는 당시 최신 기술로 대접받았던 프라이든 계산기다.
사진은 여전히 또렷하지만 역사에서 대부분 잊힌 이들 여성의 존재는 21세기를 사는 미국 과학자 나탈리아 홀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로켓 걸스'는 1940년대와 1950년대 JPL에 입사해 '인간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여성들의 자취를 뒤쫓는다.
이들은 초기 미사일을 띄우고, 태평양 위로 중폭탄을 날리고, 미국 최초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달에 우주선을 보내고, 행성을 탐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계산을 책임졌다.
당시만 해도 로켓 자체가 기성 과학계로부터 "진지한 과학자나 공학자가 로켓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을 들을 때였다.
오합지졸 젊은이들의 모임에서 출발한 JPL은 곧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몰려들면서 '로켓 걸스'의 양성소로 탈바꿈했다.
책은 대다수 여성이 선택했던 교사, 간호사, 비서라는 선택지 대신에 뚜렷한 종착지는 보이지 않지만 무한한 호기심과 끈끈한 연대감으로 새로운 길을 닦아나간 '로켓 걸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들이 끈끈한 여성집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분은 전문직 여성"이라는 말과 함께 맏이 역할을 했던 팀장 메이시 로버츠의 존재도 빠뜨릴 수 없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해 '인류의 큰 도약'을 말할 때 통제실에는 그녀들이 있었다"라는 비평가 마리아 포포바의 지적처럼 남성 중심의 서사인 우주탐사 역사를 새롭게 살펴보게 하는 책이다.
책은 '인간 컴퓨터'에게 우주 공간을 뚫고 올라가는 일 이상으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정당하게 인정받는 일이 난제였음을 보여준다.
1959년 메이시에 이어 '인간 컴퓨터' 팀장이 된 바버라 루이스를 향해, 남성 엔지니어 빌 후버가 "결혼하고 임신해서 금방 떠날 게 분명하다"면서 불만을 터뜨렸던 것이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성별에 더해 인종의 장벽까지 무너뜨렸던 연구소 최초의 흑인 직원, 자네즈 로슨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수식과 기호를 푸는 데 몰두했던 이들의 삶도 전쟁, 냉전 등과 무관할 수는 없었다.
JPL 창립 멤버였지만 매카시즘 광풍에 중국으로 쫓겨간 뒤 '중국 로켓의 아버지'가 된 첸쉐썬이나 2차 세계대전 전범이었으나 미국으로 넘어와 로켓 개발에 공헌한 베르너 폰 브라운의 이야기 등이 곁들여지면서 책이 더 흥미롭게 읽힌다.
고정아 옮김. 416쪽.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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