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초가을도 발생하지만, 겨울이 '고비'…작년 3천700만마리 살처분
철새 도래 서해안벨트서 발생 후 사람·차량 매개로 확산 양상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수은주가 영하로 뚝 떨어지고 철새 도래가 시작되면서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또다시 농장에 침투했다.
지난 19일 전북 고창의 육용오리 사육 농가가 H5N6형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진된 데 이어 20일 국내 대표 철새 도래지인 전남 순천만에서 수거된 철새 분변에서 같은 유형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 바이러스는 작년 11월 국내에서 확진된 후 3천700만 마리의 가금류 살처분을 초래하는 등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낳았던 바이러스와 같은 고병원성이다.
정부는 AI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전국 가금류 사육 농가에 48시간 이동중지명령을 내리는 등 고강도 방역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AI가 삽시간에 번질 경우 전국 가금류 사육 농가가 '멘붕'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다.
올해에도 겨울철이 시작되는 길목에서 AI가 발생하면서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지만, 발생 시기가 반드시 겨울철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AI는 국내에서 2003년 12월 처음 확진된 이후 올해 초까지 8차례 발생했는데, 2008년에는 낮 기온이 17∼20도에 달했던 4월 1일, 2014년에는 수은주가 27∼29도까지 올랐던 9월 24일 발생했다.
2015년에도 9월 14일 AI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서 예방적 살처분이 이뤄졌고, 작년 3월 23일에는 AI 확정 판정이 나왔지만, 매몰 처리된 가금류는 각 30만1천마리, 1만2천마리에 불과했다.
그런 만큼 봄·여름과 초가을에 발생하는 AI는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AI는 가금류에 전염되는 독감 바이러스인 만큼 한파가 맹위를 떨치는 겨울철에 발생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2003년 12월 AI가 확진됐을 때는 528만5천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고, 2006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진 280만마리, 2010년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647만3천마리, 2014년 1∼7월 1천396만1천마리가 매몰 처리됐다.
축산 당국은 AI 바이러스를 겨울철에 융단폭격하듯 퍼뜨리는 주범으로 철새를 꼽고 있다.
AI 초기 발생 지점을 분석하면 철새 도래지가 많은 전남 나주·영암, 전북 고창 등 서해안 벨트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후 내륙으로 파죽지세처럼 번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
흰뺨검둥오리나 청둥오리 등 몇몇 종류의 철새가 중국 헤어룽장(黑龍江)성 북부까지 날아갔다가 10∼11월 국내로 들어와 서식하는 지역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이번에 AI가 발생한 고창 육용오리 농가 인근에도 철새 도래지인 동림저수지가 있다. 환경부가 지난 18일 이 저수지의 철새 현황을 조사한 결과 흰빰검둥오리와 가창오리 등 10여종 7천20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새를 AI 전파 주범으로 꼽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분변이나 포획된 철새 시료에서도 AI 바이러스가 검출되고 있다.
철새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전파 양상이 이러다 보니 AI 전파 매개체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금류 사육 농가는 사시사철 축사를 소독하며 AI 차단방역에 나서고 있지만 산성제·염기성 계열의 소독약은 4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질 때는 효과도 적어진다.
정부는 AI 차단방역에 부적합한 소독제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권고' 수준이어서 가금류 사육 농가의 소독약 사용을 강제로 규제할 방법은 없다.
가금류 사육 농장 주변에는 논·밭이 많은데, 한창 추수가 이뤄지는 늦가을에는 농민들의 이동이 잦고 나락을 찾아 논밭 곳곳을 돌아다니는 들쥐와 텃새도 많다.
바이러스 확산의 기본이 되는 한파와 철새 도래, 농산물 수확 시기가 맞물리는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AI가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축산 당국 관계자는 "철새가 퍼뜨리는 AI가 서해안 벨트를 중심으로 발생한 뒤 사람과 차량에 의해 내륙으로 번지는 양상을 띠는 만큼 철저한 차단방역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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