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가는 초호화 유럽횡단 열차인 오리엔트 특급에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케네스 브래나 분)가 탑승한다.
폭설이 내리고 열차가 멈추던 날 밤, 승객 중 한 명인 사업가 라쳇(조니 뎁)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사방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열차 밖으로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상황. 나머지 승객 13명은 사건 당일 밤 저마다 알리바이가 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이달 29일 개봉하는 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의소설이 원작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 50년 동안 80여 편의 추리소설을 집필하며 영국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이끈 추리소설의 여왕이다. 그의 소설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번 책을 집어 들면 그 재미에서 쉽게 헤어나오기 힘들다.
그녀의 팬이라면 이번 영화도 원작만큼이나 반갑게 느껴질 법하다. 그만큼 원작의 스토리와 분위기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재현해냈다. 특히 콧수염을 양옆으로 길게 길러 끝만 위로 올린 명탐정 푸아로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이 콧수염을 구현해낸 데만 장장 9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극 중 푸아로는 완벽주의자다. 비뚤어진 넥타이, 아침 식사로 나온 크기가 다른 두 개의 계란 등 작은 불균형도 참지 못한다. 그런 성격은 그의 추리방식으로도 이어진다.
푸아로는 살인사건 용의자인 13명의 탑승자를 한명 한명 심문한다. 진실과 거짓이 뒤엉킨 그들의 말 속에서 조금씩 균열을 찾아가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끄집어낸다. 단어의 악센트나 손수건에 새겨진 이니셜과 같은 사소한 단서로 단번에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는, 놀라운 추리력을 발휘한다.
다만, 인터넷 검색과 DNA 감식 같은 첨단 과학수사 기법 등에 익숙한 관객층에는 이런 추리방식이 낯설게 다가올 법도 하다.
영화는 또 롤러코스터와 같은 빠른 전개와 반전보다는 완행열차를 탄 듯 다소 더디게 가는 편이다.
그러나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몰려드는 쾌감은 더 크다. 살인사건에 얽힌 숨겨진 사연과 동기가 마침내 드러나면서 진범을 찾는 재미 이상의 감동을 준다. 사실과 도덕성 사이에서 정의의 무게추가 어디로 쏠려야 할지에 대한 묵직한 고민도 안겨준다.
영화의 무대는 주로 꽉 막힌 열차 안이다. 그러나 설원의 모습 등 외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갑갑한 시야를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은 탑승객들이다. '귀향'으로 제59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페넬로페 크루즈(선교사 역)를 비롯해 윌렘 대포(독일계 교수), 주디 덴치(공작부인), 조니 뎁(라쳇), 미셸 파이퍼(허바드 부인), 데이지 리들리(가정교사) 등 쟁쟁한 배우들이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탑승했다. 영화 '토르: 천둥의 신' 등을 연출한 배우 겸 감독 케네스 브래나가 직접 연출하고, 탐정 푸아로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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