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구로공단, 팽목항 등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 담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아아악.//터져 나오는 비명을 깨물어 삼켰다. 손톱 뿌리고 뽑히고 있었다. 고개 들 틈 없이 배터리를 끼우다 보면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았다. 굳어 버린 손가락 끝에서 손톱 두 개가 새까맣게 죽어 빠졌다.//으으악.//팔에 마비가 와도 통증을 깨물었다. 라인을 비울 순 없었다. 쌓인 물량은 쉬는 시간을 바쳐서라도 해결해야 했다."
기륭전자에서 '호출형' 노동자로 2년간 일하다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세요"라는 문자메시지 한 줄로 해고된 연경숙 씨는 2010년 구로디지털단지 외곽의 한 아파트형 공장에 들어가 휴대전화 배터리를 조립한다. 라인을 타고 5㎝ 간격으로 밀려오는 배터리들의 맹렬한 속도에 비명이 나오지만 참아야 한다.
첨단을 자랑하는 디지털단지의 반짝이는 빌딩 숲을 보며 그 안의 이런 살풍경을 짐작이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간 '웅크린 말들'(후마니타스)은 이 땅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동안 발화되지 않은 가혹한 현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재하는 현실의 장소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에서 기사나 르포라고도 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묶어 직조한 비극적인 이야기들은 한 편의 소설집으로도 읽힌다.
저자는 '한겨레' 기자인 이문영. 그가 2013년 10월부터 2014년 8월까지 '한겨레21'에 연재한 '이문영의 한恨국어사전'을 기초로 글을 고치고 새로 더해 엮은 책이다.
폐허로 남은 사북 탄광촌에서 유령처럼 사는 옛 광부, 평생 구로공단을 맴돈 여성 노동자, 삼성전자서비스 에어컨 기사로 일하다 숨진 노동자, 대부업체 콜센터 직원, 소록도 한센병 환자,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 세월호 참사로 어린 딸을 잃은 부모의 이야기 등이 담겼다.
1958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구로공단에 취직하고 1976년 해고된 뒤 버스 안내양으로 일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식당 아줌마', '공장 아줌마'를 전전하다 늙어서는 백화점 화장실의 '청소 할머니'가 된 순덕 씨의 이야기는 한국 노동계급 여성의 현대사를 압축한 듯하다.
저자는 한국이란 나라 안에는 이들의 피땀과 눈물로 이뤄진 한(恨)국어가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말해지도록 길을 내는 언어가 절박하다. (중략) '우리'의 편안한 일상을 지탱하는 '우리'의 가혹한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 이 시대 언어와 문자의 최전선이다." (480쪽)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는 추천사로 "'난쏘공'의 난장이들이 자기 시대에 다 죽지 못하고 그때 그 모습으로 이문영의 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496쪽. 2만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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