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23일 서울 시내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 앞은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수험생 후배들의 응원전이 재연됐다.
경북 포항 지진으로 한 주 늦춰진 데다 전날보다 기온까지 '뚝' 떨어졌지만 후배들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북과 꽹과리를 치며 응원에 여념이 없었다.
학부모들은 어려운 시험을 치르는 자녀들이 안쓰러운 듯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조용히 격려했다.
수험생들은 후배들의 응원이나 부모의 격려 속에서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고사장으로 향했다.
◇ 올해도 '수능대박' 응원전
종로구 동성고 앞에는 오전 6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간인데도 고등학생 응원단이 100명 가까이 모여 수능 시험을 치르는 선배들을 위해 응원전을 펼쳤다.
이들은 추위에 대비해 롱패딩에 목도리·모자까지 방한용품으로 완전 무장하고서 수험생들이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발광 응원봉을 흔들고 북과 꽹과리를 치며 함성을 질렀다. 핫팩 등 추위에 대비할 수 있는 용품을 나눠주기도 했다.
수험생들은 굳은 얼굴을 하다 응원전을 보고 약간 긴장이 풀린 듯 미소를 지었다.
중구 이화외고 앞에서는 덕성여고 학생들이 한 대부업체 광고 음악을 개사해 "수능 수능 수능 대박, 덕성 덕성 믿으니까, 오∼ 걱정마세요"라고 응원곡을 불렀다.
고사장마다 응원전의 분위기도 달랐다.
종로구 경복고 앞에서는 경신고와 대신고, 용산고 학생들이 풍선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목청이 찢어질 듯 큰소리로 '응원 경쟁'을 벌였다.
배문고 학생 10여명이 마치 군가처럼 다소 걸걸한 목소리로 트와이스의 노래 '치어업'을 부르기도 했다.
반면 영등포구 여의도여고 앞에 있는 응원 학생들은 수험생들에게 조용히 핫팩 등을 나눠주며 "잘 보세요", "힘내세요"라고 격려했다.
재치 있는 현수막과 피켓도 선보였다. '수능대박'처럼 단순한 구호부터 '수능 잘 볼 거야/ 능력 있는 너라면' 등 수능 2행시 피켓에 '이번 수능은 내가 맡는다' 등 자신감을 북돋우는 펼침막까지 다양했다.
'선배님, 재수 없습니다' 등 학력고사 시절부터 수십 년을 이어내려온 고전(?)적인 구호도 있었다.
일부 고사장 앞에서는 응원전 도중 눈발이 날리자 학생들이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경복고 앞에서 응원전을 벌인 정준호(중앙고 2학년)군은 "형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핫팩을 친구들과 사서 포장했다"며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고사장에서도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여의도고에서 시험을 치르는 임태우(19)군은 "많이 긴장되지는 않는다"며 "수능이 미뤄져서 답답했지만 포항 수험생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다. 모두 좋은 성과 거뒀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 부모 마음은 "내가 더 긴장돼"
학부모들도 이른 아침부터 고사장에 나와 조용히 자녀를 격려하고, 시험에 차분하게 임할 수 있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이화외고 앞 편의점에서 미처 아침을 먹지 못한 수험생 딸에게 요깃거리를 먹이는 최모(51·여)씨는 "엄마도 시험 날이면 긴장하고 그랬는데 잘 이겨내고 나와 너 같은 딸을 낳았지"라며 딸의 긴장을 풀어줬다.
서초구 서초고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 김모(고3)군의 어머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준비한 대로만 잘해"라고 말하며 끌어안아 주려 하자 김군은 "됐어, 엄마. 얼른 끝내고 올게.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고 뚜벅뚜벅 고사장으로 향했다.
같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고3 남학생의 아버지는 교문 앞까지 아들을 데려다준 뒤 웃으며 뽀뽀를 했다. 현장에 모인 취재진이 '한 번 더 해달라'라는 부탁에 아버지가 다가가자 수험생 아들은 "아이 왜 그래" 하며 한동안 도망 다니는 해프닝도 벌였다.
부모들은 자녀가 고사장 안으로 들어선 뒤에도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여의도여고 고사장으로 자녀를 들여보낸 어머니 정은영(49)씨는 뒤로 돌아 눈물을 흘렸다. 정씨는 "아이에게는 주사위는 이미 굴려졌으니 실수 없이 담담하게 잘하고 오라고 했지만 가슴이 뛰어서 내가 더 진정이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같은 고사장 앞 오지위(46·여)씨는 딸을 교문 안으로 들여보낸 뒤 휴대전화 카메라로 뒷모습을 '찰칵' 찍었다. 오씨는 "큰 아이도 수능을 치르는 날 사진을 찍어줬는데 둘째 딸도 뜻깊은 순간이니 찍어주려 했다"며 "힘들었을 텐데 그동안 고생해줘서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김양숙(54·여)씨는 "아들이 시험을 보러 들어갔는데, 지금 갈 수가 없다"며 "엄마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있으면 아이가 더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는 시험 시작 종이 울릴 때까지 경복고 교문 앞에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최모(49·여)씨도 입실이 마감된 뒤인 오전 8시20분께까지 동성고 고사장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최씨는 "집이 충남인데 서울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들을 위해 서울에 숙소를 잡았다"며 "고사장이 어디가 될지 모르고 도시락도 싸야 하니 3·4호선이 모두 지나는 충무로 레지던스 호텔 잡았다. 사실 지난주에도 잡았는데 수능이 연기돼 예정이 없던 '예행연습'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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