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의 시선] 하와이 사진신부의 고난과 승리

입력 2017-11-24 07:31  

[김은주의 시선] 하와이 사진신부의 고난과 승리

(서울=연합뉴스) 1910년 11월 28일 하와이 호놀룰루 항. 최사라라는 23세 목포 출신 조선 처녀가 배에서 내렸다. 하와이 사진신부 1호이다.

최사라는 당시 38세이던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이내수와 결혼했다. 하와이에서 우리말로 발행되던 국민보 1910년 12월 6일 자에는 이내수가 조선에서 온 약혼녀와 민찬호 목사의 주례로 이민국에서 결혼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진결혼 2호는 23세 의주 처녀 유명선과 39세 백만국이었다.

이들을 시작으로 미국의 동양인배척법(Oriental Exclusion Act)이 제정된 1924년까지 14년 동안 1천56명의 조선 여성이 중매쟁이가 건넨 신랑감 사진 한 장을 들고 혈혈단신 태평양 건너 머나먼 땅 하와이로 갔다. 이역만리 항해에 나선 사진신부들의 나이는 16세에서 24세 정도, 학력은 대부분 무학이었다.





하와이 사진신부란 하와이에 이민한 신랑감의 사진만 보고 편지로 결혼을 약속하고 결혼 이민을 떠난 여성들을 말한다.

하와이에 도착한 사진신부들은 마중 나온 신랑감을 보고 기겁을 했다. 사진 속 20대 청년은 간데없고 노동에 찌든 아버지뻘 되는 나이 든 남자가 나와 있었다. 그들의 평균 나이 차이는 15살. 당시 조선의 조혼 풍습으로 보면 부녀지간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고국으로 보낸 사진들은 대개 10여 년 전 조선에서 하와이 이민 노동자를 모집할 때 찍은 사진들이거나, 남의 저택이나 좋은 차를 배경으로 연출한 사진들이었다.

그래도 이 여성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국으로 돌아가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었다. 하와이로 오는 비용을 신랑감이 부담한 데다, 고향으로 돌아갈 뱃삯도 없었고, 돌아간다고 해도 기다리는 것은 암울한 현실과 막막한 미래뿐이었다. 그렇게 결혼한 사진신부들은 낮에는 남편과 함께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고 밤에는 삯바느질해서 생계를 꾸리고 자식들을 길렀다. 사진신부들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남편과 이른 나이에 사별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양계 이민자들이 늘어나자 실직 위기에 처한 하와이 주민들의 반발로 미국 의회가 1924년 동양인배척법을 제정, 동양인의 미주 이민을 금지하면서 사진신부도 더는 하와이로 들어올 수 없게 됐다.





당시 하와이는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다. 백인 노동자는 임금이 비쌌고 일본인이나 중국인 노동자도 세월이 흐르자 미국 본토로 건너가거나 파업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도 거듭되는 가뭄과 홍수로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백성들을 외국으로 이민 보내는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1902년 하와이 설탕재배자협회의 찰스 비숍회장이 내한해 대한제국 정부와 이민협정을 체결했다. 1902년 11월 이민업무를 전담하는 수민원이라는 기구가 설립돼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할 이민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마침내 1902년 12월 22일 102명의 청년이 제물포항에서 증기선 게일릭호에 승선해 하와이로 떠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이민이었다. 이들은 1903년 1월 13일 새벽 호놀룰루 제2부두에 도착했다. 첫해 1천133명을 시작으로 1904년에 3천434명, 1905년에 2천659명 등 1905년 7월까지 2년 반 동안 65회에 걸쳐 7천226명이 건너갔다.

이들은 하와이 전역 사탕수수농장에 배치됐다. 뜨거운 햇볕 아래 열악한 환경과 가혹한 중노동, 저임금에 시달렸다. 사탕수수농장의 일과는 새벽 4시 반에 시작돼 오후 4시 반에 끝났다. 점심시간 30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이들 상당수가 미혼이었으나 동양인과 미국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금혼법으로 현지의 미국 여성과 결혼할 수 없었다. 결혼하러 고향을 다녀온다는 것은 시간과 비용 때문에 상상할 수도 없었다. 정상적으로 가정을 이루지 못한 이들은 심리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음주, 도박, 범죄에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농장주들은 이들이 결혼하지 않아서 작업능률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것이 사진결혼이었다. 하와이 정부는 결혼을 위해 하와이에 오는 여성들의 입국을 허가했다.

매일신보 등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하와이에 이민 간 한국 남성들의 사진을 들고 집집이 돌아다니며 중매를 하고 수수료를 받는 여성들이 있었다. 미혼 여성뿐 아니라 과부들까지 하와이가 지상낙원이라는 중매쟁이의 말에 솔깃해 배를 탔다.

이민자들이 가정을 이루자 비로소 한인 공동체가 형성됐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을 텐데 당시 남자 67센트, 여자 50센트에 불과한 하루 품삯의 3분의 1을 떼어 독립운동 자금 총 300만 달러를 모았다. 하와이 국민회는 동포들의 생활 안정, 2세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독립운동 자금 모금운동도 펼쳤다. 1932년 5월 22일 오하우 섬 와이하와 지역 동포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회를 결성했다.






하와이 초기 한인이민사는 여성들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신부들은 부단한 노력으로 하와이 한인사회 발전의 주역이 되었고, 독립운동에도 남성 못지않게 기여했다.

이들은 남의 집 똑똑한 자녀들을 위해 장학금을 마련해주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온갖 힘든 일을 마다치 않았다. 일부는 신명부인회, 부인교육회, 대한부인회, 대한부인구제회 등에서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하와이 이민자 중 상당수는 고된 노동을 견디다 못해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본토로 재이주했다. 본토의 철도노동자 임금이 사탕수수농장 임금의 2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1910년 당시 하와이에 남아 있던 한인은 4천187명이었다.







외교부에 따르면 2016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전체 재외동포는 743만664명, 이중 미주 지역 동포는 283만9천978명이다.

첫 이민자가 호놀룰루 항에 도착한 날을 기념하여 미국 연방 상하원은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The Korean American Day)'로 공식 지정하는 법안을 지난 2005년 12월 통과시켰다.

미국 전역에서 기반을 다진 이민 1세대들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놀라운 교육열을 발휘해 후손들이 미국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미주 동포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어느 민족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가난과 망국, 전쟁 때문에 고국을 뒤로하고 이국땅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 떠났던 선조들과는 달리 세계를 무대로 당당히 활약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은 이주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국가로 변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주민 수는 2016년 11월 1일 현재 176만4천664명으로, 총인구 대비 3.4%에 이른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94만6천651명, 여성이 81만8천103명이다. 이주 여성 중에는 한국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서 한국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

100여 년 전 고된 항해 끝에 불안 반 기대 반으로 호놀룰루 항구에 내렸을 사진신부들. 처음 보는 신랑을 만나서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백인들로부터 차별받으며 노동을 하고 자식을 길렀을 것이다. 신산한 삶에 고향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 흘린 날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으로서 자부심은 잃지 않았다. 이들의 노력으로 재외동포들은 오늘날의 지위를 갖게 됐다. 이들의 역경과 승리를 생각하면 우리 주위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주자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시선과 포용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글로벌코리아센터 고문)

ke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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