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무능에 상설전범재판 차질…유고재판 종결로 다시 주목

입력 2017-11-24 10:53   수정 2017-11-24 11:11

국제사회 무능에 상설전범재판 차질…유고재판 종결로 다시 주목

유엔 ICC 역할론도 '공염불'…미국·사우디·부룬디 등 공공연한 괄시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보스니아 스레브니차에서 이슬람교도 8천여명을 학살해 '발칸 도살자'로 불리는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 군 사령관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받으면서 유엔 산하 국제 유고전범재판소(ICTY)의 임무도 끝났다.

전쟁범죄와 반인륜적 범죄를 처벌하고자 1993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워진 ICTY는 내달 문을 닫지만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스레브니차 학살' 같은 잔혹한 전쟁범죄는 현재진행형이다.




ICTY의 퇴장과 시리아 내전의 각종 전쟁범죄 등이 맞물려 상설 전범재판 기구인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역할은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23일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믈라디치에 대한 종신형 선고 직후 성명을 내고 "ICC의 중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이들은 이번 사건을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날 세계 곳곳의 여러 상황에서 심각한 국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이들은 이 결과를 두려워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이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등 반인륜 범죄를 자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경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ICC는 ICTY처럼 특정 전쟁범죄가 아닌 지구촌에서 발생하는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상설 전범재판기구를 설치하고자 1998년 채택된 로마규정을 근거로 2003년 헤이그에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ICC의 전범재판은 강국의 힘의 논리에 밀리고 사법관할권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인 처벌이 쉽지 않은 약점을 안고 있다.

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로마규정에는 서명했으나 자국민에 대한 ICC 관할권을 인정할 경우 해외 파병 미군들이 ICC 재판에 회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 2002년 조시 W. 부시 행정부는 ICC에 불참하기로 했다.




실제로 ICC는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된 전쟁범죄 조사를 위해 미군과 미 중앙정보부(CIA) 요원들을 조사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미국인에 대한 ICC의 조사는 부적절하고 부당하다"며 거부했다.

ICC 회원국이 아닌 미 정부는 자국민에 대한 ICC의 사법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아 ICC가 아프간 전쟁범죄 조사에 착수해 미국인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더라도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ICC 회원국들조차도 자국이나 동맹국이 전쟁범죄에 연루된 경우 ICC 조사 협조 요청에 콧방귀를 뀌거나 방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해 ICC는 2015년 아프리카 부룬디의 피에르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하고 야당의 불참 속에 3선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반인륜 범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부룬디는 "ICC가 아프리카 국가들만 겨냥한다"며 급기야 지난달 28일 ICC 회원국으로는 처음으로 탈퇴를 선언했고 ICC는 부룬디 사태에 대한 조사는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ICC는 아프리카 수단의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에 대해 지난 2009년과 2010년 30여만 명이 사망한 다르푸르 사태의 책임을 물어 인종학살, 전쟁범죄 등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ICC의 조사를 비웃듯 버젓이 지난 5월 아랍 주요국 정상회의에 바시르 대통령을 초청했고 우간다도 최근 국제인권단체의 비난에도 바시르 대통령을 초청하며 ICC의 전쟁범죄 단죄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서 ICC가 아프리카 국가들만 불공평하게 겨냥하고 있다며 각국 지도자들이 탈퇴를 논의하기도 했다.

보스니아 전쟁범죄에 대한 단죄가 마무리되면서 다음 단죄 대상은 시리아 내전의 화학무기 사용과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습 배후로 지목되는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그러나 시리아 전쟁범죄 조사를 진행해온 유엔 시리아조사위원회는 2011년 8월 출범 이후 10여차례 관련 보고서를 내고 아사드 정권의 전쟁범죄 증거를 수집해왔으나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혀 사실상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전쟁범죄 문제를 ICC에 회부하려는 시도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ICC 근거가 되는 로마규정은 사건 발생 장소나 범죄 혐의자의 국적 등이 ICC 회원국이 아니어도 안보리가 이를 ICC에 회부하면 ICC가 나서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시리아 사태처럼 안보리 회원국이 반대하면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실정이다.

시리아와 이란 등은 지정학적 이해관계 때문에 아사드 정권을 후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터키까지 여기에 합류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쟁범죄 단죄를 위한 ICC의 노력은 계속돼야 하며 그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는 데 이견은 없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3일 믈라디치 종신형 판결과 함께 문을 닫는 ICTY가 남긴 교훈은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ICC가 존재하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ong0716@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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