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시설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정치활동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던 당시 국방부 장관과 정책실장이 잇따라 법원의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신광렬 수석부장판사)는 24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의 구속적부심에서 "일부 혐의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보석(보증금 조건 석방) 결정을 내렸다. 임 전 실장의 직상급자였던 김관진 전 장관도 이틀 전 같은 재판부의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됐다. 25일에는 다른 건으로 청구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군 사이버사 사건과 관련해 영장이 발부됐던 주요 피의자가 법원의 적부심에서 잇따라 석방되자 구속수사의 타당성과 영장 발부 기준 등을 놓고 이런저런 말이 나온다. 법원과 검찰 간 갈등이 재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김 전 장관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장기간 역임했다. 두 정권의 안보 정책을 주도해온 핵심 인사로 볼 수 있다. 그런 김 전 장관이 이명박 정부의 군 사이버사 정치활동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되자 충격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적지 않았다. 국가 이미지와 대외 안보 정책 조율 등을 고려할 때 불구속 수사가 합당하다는 반론도 나왔다. 그런데 불과 10여 일 만에 김 전 장관이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나자 검찰 입장이 난처해졌다. 김 전 장관과 한 사건에 묶여 있기는 하지만 임 전 실장까지 석방됨으로써 무리한 수사였다는 말을 들을 만하다. 한참 속도를 올리던 군 사이버사 수사도 애초 계획대로 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특히 턱밑까지 다가간 듯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영점을 다시 잡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검찰만 상처를 입은 건 아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법원도 정치권 일각과 네티즌의 험구로 곤욕을 치렀다.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의 적부심을 담당한 신 수석부장판사는 특히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터무니없는 비난과 인신공격을 받았다. 많은 네티즌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험담을 퍼부었고 몇몇 여권 정치인도 가세했다. 일각에선 법원의 영장 발부로 구속된 피의자를 불과 열흘 상간에 법원이 다시 풀어줄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신 구속에 대한 법원의 잣대가 너무 자의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구속영장 심사와 구속 적부심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영장 심사는 전담판사 개인이 하지만 적부심은 판사 3인으로 구성된 형사합의부가 맡는다. 구속 적부심은 피의자 인권보호를 강화한 제도다. 영장전담판사보다 높은 수준의 숙려가 기대되는 형사재판부의 판단을 다시 받아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같은 맥락에서 구속된 피의자가 적부심에서 석방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3심제로 돼 있는 사법체계의 근간을 의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작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검찰의 지나친 구속수사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구속=유죄' 또는 '구속=처벌'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해 있다. 법원이 적부심을 통해 피의자를 석방한 것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라는 뜻일 뿐이다. '구속=유죄'나 '불구속=무죄'나 성립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처럼 불합리한 인식의 저변에선, 피의자를 구속해 조사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검찰의 '수사 편의주의'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엄연히 무죄추정의 원칙,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인신 구속은 피의자의 자기 방어권을 심각하게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 최근 '적폐수사'를 보면 피의자 조사도 이뤄지기 전에 피의사실이 유포된 사례가 적지 않은데 대부분 구속수사 관행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피의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 영장 발부에 유리한 기류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망신주기' 식 여론재판을 조장하는 심각한 인권침해로 불법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검찰은 가급적 구속수사를 지양해야 한다. 대신 효율적인 수사기법 개발과 법리연구로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끌어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법원 판결이나 결정이 나올 때마다 근거도 없이 비판부터 하는 행태를 버려야 한다. 정치권이 모범을 보여야 민주주의 근간인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원칙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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