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농가 "10만원 이하 못 맞춰…한우는 규제에서 제외해야"
과수 화훼 "10만원이면 충분히 선물 구성, 숨통 트일 것"
(전국종합=연합뉴스) "상한액이 늘면 뭐해요? 고기 몇 덩이 상자에 담으면 그 가격 훌쩍 넘어가는데. 소 키우는 사람들은 5만원이나 10만원이나 다 똑같아요."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상 공직자 등에게 제공 가능한 선물 상한액이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한우 농가는 여전히 울상이다.
한우 생산 비용이 해마다 늘어 상한액을 올려도 가격에 맞는 선물세트를 만들 수 있는 품목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게 농가들의 하소연이다.
한우 농가는 상한액 인상 대신, 청탁금지법 선물 규제 대상에서 한우 등 특수성이 있는 농산물은 아예 제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지훈 충남 홍성한우협회장은 "한우 고급육을 키우는 데만 2년 정도 걸리는데 암소는 300만원, 거세우는 350만원 정도 든다"며 "덩치도 크고 사육 기간도 긴 한우는 상한액을 10만원으로 올려도 선물할 수 있는 품목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전했다.
박영철 전국한우협회 강원도지회장도 "한우를 청탁금지법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아 실망스럽다"며 "작년부터 수입 소고기가 늘면서 한우 자급률이 30%까지 떨어졌는데 상한액을 올리면 그 가격에 살 수 있는 수입산이 국내 시장을 완전히 잠식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농민들도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경북 안동에서 한우 100여 마리를 키우는 김모씨는 "한우는 단가가 과일 등 다른 농산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상한액을 올려도)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상한선을 단일화하는 것보다 특수성이 있는 축산물에 대한 탄력적 운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북 정읍에서 한우 농장을 운영하는 이모씨도 "선물 가격을 똑같이 규제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과일이나 생선은 5만원이면 그런대로 괜찮은 상품을 선물할 수 있지만, 한우는 그 가격이면 뼈하고 국거리 말고는 상자에 넣을 게 없다"고 토로했다.
이와 반대로 과수·화훼농가는 청탁금지법 선물 상한액 인상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우보다 생산 단가가 저렴해 10만원으로도 충분히 상품성 있는 선물 구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과수·화훼농가는 청탁금지법 개정을 계기로 이전보다 다양한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영철 영남 화훼원예농협 판매과장은 "현재 5만원 이하 저가 화환이 많이 유통되지만, 일반적인 화환은 10만원 정도로 가격이 형성된다"며 "김영란법 이후 가격이 묶여 소비가 위축됐는데 상한액이 오르면 선물 구성과 쓰임새가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주 한 화훼농가 업주도 "꽃바구니는 최소 5만원은 돼야 마진이 남는 데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다"며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한 송이도 사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조정이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충남 예산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한모씨는 "과일은 한우나 굴비보다는 타격을 덜 받았지만, 부사나 엔비 등 사과 프리미엄 품종은 아예 소비가 안 돼 재고가 쌓이고 있다"며 "가뜩이나 수입과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법이 개정되면 농가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7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청탁금지법 선물 상한액 인상 등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하고, 당정협의를 거쳐 오는 29일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관련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성호 이해용 이강일 손상원 박주영 고성식 정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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