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차량-보행자간 충돌 빈발 건널목에서 보행 녹색신호 3초 이상 먼저 줘
"사망·중상자 60% 감소 효과"…교통흐름 느려진다 불만도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미국에서 교차로 건널목을 건너려는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범 도입된 '보행자 보호 간극(LPI· Leading Pedestrian Interval)' 교통신호 체계가 좌·우회전하는 차량에 치여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는 사고를 크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미국 전역 대도시들이 복잡한 교차로에 이 신호체계의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LPI 신호체계는 건널목에서 기다리는 보행자들에게 길을 건너도 좋다는 신호를 먼저 주고, 건널목 폭에 따라 3-11초 뒤 차량에 진행 신호를 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보행자들이 건널목에 이미 들어서 있는 상황에서 차량이 좌·우회전하게 되기 때문에 보행자들이 더 쉽게 눈에 띄게 돼 회전차량과 보행자가 충돌하는 사고를 줄일 수 있다. 기존 동시 신호체계에선 차량이 회전하면서 동시에 건널목에 내려서는 보행자를 치는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뉴욕타임스는 27일 이러한 보행자 '우선출발제(head start)'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교통 흐름 조사와 기존 신호등 프로그램 재조정만으로도 교통안전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책으로 대도시 교통관계자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고 전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도로안전연구센터는 미 연방도로청(FHA)의 의뢰로, 뉴욕, 시카고 등 도시의 교차로 100곳을 대상으로 LPI 교통신호 체계 도입 전과 후의 보행자와 차량 간 교통사고(2001~2014년)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데, 잠정 결과이긴 하지만 차량 대 보행자 간 충돌을 줄이는 효과가 확인됐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현재 2천381개 교차로에 LPI 신호체계를 도입해 미국 대도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뉴욕의 경우 40여 년 전인 1976년 최초의 보행자 우선 출발 신호제를 도입했으나, 시 교통 당국이 이 신호제를 본격 확대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교통사고 사망자와 중상자를 완전히 없애자는 국제 운동인 '비전 제로(Vision Zero)'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뉴욕시는 보행자와 차량 간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곳이나 노약자가 길을 건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곳에 이 신호체계를 우선 시행하고 있다.
뉴욕시가 지난해 LPI 신호체계가 있는 교차로 104곳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보행자들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는 사고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보다 보행자에게 먼저 출발 신호를 주는 것은 "건널목에서 보행자를 무시하려는 차량 운전자를 빤히 쳐다보면서 '당신, 정말 내 길 중간에 끼어들어 막으려는 것이냐'고 묻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뉴욕시 한 관계자는 이 신문에 설명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전국도시교통담당관협회(NACTO) 웹사이트는 LPI에 대해 "특히 보행자와 차량간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교차로에서, 보행자들을 더 쉽게 눈에 띄게 함으로써 회전차량에 우선하는 보행자의 통행권을 강화해주기 때문에 보행자-차량 충돌을 60%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게 입증됐다"고 밝혔다.
NACTO는 LPI를 적용할 경우 보행자들에게 최소 3~7초의 우선 출발 시간을 줄 것을 권고하면서 보행자 교통량이 많거나 건널목이 긴 곳에선 보행 신호를 더 여유 있게 10초 정도 먼저 주는 게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막무가내로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운전자와 보행자들에겐 LPI도 소용없으며, LPI로 인해 교통 흐름이 느려지고 교통신호 자체가 혼란스럽다는 불만도 제기된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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