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3%대지만 '다시 보기'로는 비지상파 1위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OCN 주말극 '블랙'이 묘한 매력으로 조용히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내용이 갈수록 어렵고 복잡해져 폭넓은 시청자층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음에도 독특한 내용과 구조에 매료된 충성스러운 시청자를 중심으로 단단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2.5%에서 출발해 4회에서 4.7%를 기록하며 상승세였던 시청률은 이후 미로 같은 이야기로 인해 꺾여 3%대에 머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재방송을 포함한 각종 '다시보기'에서 위력을 발휘하며 '챙겨보는 시청자'가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 TTA 순위서 비지상파 프로그램 1위 차지
시청률조사회사 TNMS가 지난 1일부터 집계하는 TTA (Total TV Audience, 통합시청자수) 순위에서 '블랙'은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해 눈에 띄는 경쟁력을 발휘 중이다.
TTA는 본방송에 더해 케이블채널 재방송과 IPTV 3사 주문형 비디오(VOD)를 통해 동일 콘텐츠를 시청한 총 시청자수를 합산한 것이다. 본방송 시청자수와 7일간 각종 '다시보기'를 이용한 시청자수를 더해 집계한다.
이에 따르면 '블랙'은 지난 4일 본방 시청자수로는 전체 프로그램 중 28위였지만, 4일 방송분에 대한 TTA 순위에서는 20계단 상승해 8위를 차지하는 등 TTA에서 줄곧 강세를 보이고 있다.
TTA의 가장 최근 집계인 지난 12일 방송분에서도 '블랙'은 본방송은 71만2천명이 시청했지만, 18일까지 일주일간 집계에서는 주문형비디오(VOD)를 통해 4만8천명, 재방송을 통해 122만6천명이 시청해 총 127만 4천명이 '다시보기'로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방송 외에 다른 경로를 통해 '블랙'을 훨씬 더 많이 시청한 것이다.
이에 따라 '블랙'은 12일 방송된 프로그램 중에서는 시청률이 32위였지만, TTA에서는 20계단 상승해 12위를 차지했다. 이는 TTA에서 지상파를 제외한 채널 프로그램 중 1위의 성적이다.
TNMS는 28일 "주변에서 '블랙'을 많이 시청하는 것 같은데 시청률이 낮은 이유는 '블랙'의 경우 본방송보다 다시보기를 통한 시청자가 많기 때문"이라며 "'블랙'은 본방송 기준으로 평가하는 시청률 순위에서는 실제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 수보다 훨씬 저평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2일 방송 프로그램 중 TTA 1위는 KBS 2TV '황금빛 내 인생'이며, SBS TV '미운 우리 새끼'와 KBS 2TV '해피선데이', MBC TV '밥상 차리는 남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시청률 순위에서 1~20위 안에 든 프로그램은 TTA에서도 대체로 비슷한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블랙'만이 매회 TTA 순위에서 시청률 순위보다 20계단 정도 뛰어오르며 '다시보기'를 통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송승헌표 저승사자' 인기
'블랙'의 이야기는 어렵고 불편하다. 처음에는 '원조 꽃미남' 송승헌이 창조해내는 '병맛 코미디'로 대표되는 줄 알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미스터리 구조, 인간 세계와 저승사자 세계를 병렬 배치하는 판타지 구조 속에서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더구나 심히 불편하다. 미성년자 성매매와 대형 쇼핑타운 붕괴 비리라는 참담하고 끔찍한 소재를 정중앙에 놓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두껍게 덮어놓았던 흙을 조금씩 파내면서 전진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 살인사건인 줄 알았던 일이 연쇄살인사건이 되고, 단순 정신병자의 범행인 줄 알았던 일이 거대한 음모로 밝혀지면서 드라마의 내용은 복잡해지고 있다.
인물 간 관계도 양파껍질 벗겨내듯 새롭게 정리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폭력적인 범죄가 이어진다. 여기에 죽음을 보는 자와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드라마는 공포영화 같은 음산한 기운을 함께 뿜어내고 있다.
미국에서 최초로 리메이크된 한국 드라마 '신의 선물 -14일'을 썼던 최란 작가는 '신의 선물'에 이어 '블랙'에서도 어둡고 무거운 판타지를 그려내며 묘한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회를 거듭할수록 어려워지는 이야기, 조금씩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이라는 테마를 이번에도 두 손에 쥐고 달려나가고 있다.
설명이 필요하고, 곱씹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약점이라면, 송승헌표 저승사자는 장점이다.
안하무인 저승사자가 빙의된 심약한 형사의 '둔갑' 캐릭터가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경악시키는 코미디가 허를 찌른다. 늘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송승헌은 이번 저승사자 연기를 통해 '최적의 옷'을 입었다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드라마 내용이 어려워도 송승헌 때문에 본다"는 시청평까지 낳고 있다.
건방진 저승사자가 멋진 수트 차림을 하고 어설프게 인간 흉내를 내는 모습이 어두운 '블랙'에 숨 쉴 구멍을 제대로 내주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이러한 '조용하지만 단단한 인기' 덕에 2회가 연장돼 12월10일 18회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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