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展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학창 시절부터 역사와 사회에 관심이 많았어요. 공적이고 큰 역사보다는 개인적이고 작은 역사를 좋아했어요. 예술가로서 지금 세대가 역사 속에서 고통을 받은 분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관계를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요."
지난 2015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위로공단'으로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48)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개인전을 30일부터 연다. 현대자동차가 2014년부터 매년 중진 작가 한 명을 선정해 후원하는 '현대차 시리즈' 전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다. 부제로는 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 등 7개 단어가 붙었다. 전시 명칭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생성된 분단 이데올로기가 마치 유령처럼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파괴했다는 작가의 현실 인식이 담겼다.
그는 정정화(1900∼1991), 김동일(1932∼2017), 고계연(85), 이정숙(73) 등 굴곡진 현대사를 살아야 했던 할머니 4명의 삶을 소재로 한 영상과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개막에 앞서 28일 기자들과 만난 임흥순은 작품 제작을 할머니들의 삶 속에 있는 여러 요소를 채취하는 과정으로 비유하면서 "그들의 인생을 지식으로 축적하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부모가 노동자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빈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했고, 이들의 정서를 풀어나갈 방법을 고민했다"며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의 묻힌 역사를 소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할머니 네 명은 모두 분단 혹은 소외를 경험한 소시민이자 약자다. 그들은 젊은 시절에 일제강점기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제주 4·3사건, 지리산 빨치산, 한국전쟁, 월남전 같은 굵직한 사건을 겪었다.
작가는 할머니들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미술관 벽면에 커다란 연표인 '시나리오 그래프'를 만들었다. 또 전시장 입구 앞에 설치된 2층 높이의 벽은 온통 붉은색으로 칠했다.
이에 대해 그는 "우리는 (공산당을 상징하는) 적색에 대한 공포나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며 "이제는 이러한 공포를 마주하고 극복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전시 공간은 정정화, 김동일, 고계연 할머니를 위한 5전시실과 이정숙 할머니에 초점을 맞춘 7전시실로 나뉜다.
사천왕상, 계곡, 배, 고목이 있는 5전시실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일종의 이계(異界)로, 희생의 역사를 감내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곳이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진혼곡을 들려주는 대신 전시명과 같은 제목의 3채널 영상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을 보여준다.
이어 7전시실에서는 2채널 영상과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자세하게 기록한 노트, 인터뷰 녹취록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홍보 영상은 12월 한 달간 수도권에 있는 영화관 120여 곳에서 상영되며, 작가는 전시와 연계한 장편영화를 내년 3월까지 만든다.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숨어 있지만 생명력을 잃지 않는 트라우마와 상처에 관한 전시"라며 "종국에는 거대한 치유의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4월 8일까지. ☎ 02-3701-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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