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부가 장기소액 연체자 159만 명의 채무 6조2천억 원을 대상으로 탕감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1천만 원 이하의 빚을 10년 이상 갚지 못한 채무자들이 그 대상이다. 이들 연체자는 당국의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 한 번에 한해 채무를 탕감받을 수 있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29일 이런 내용의 장기소액 연체자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내년 2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심사에서 회수할 재산이 없고, 소득이 중위소득의 60%(1인당 월 소득이 99만 원) 이하로 밝혀지면 추심이 중단되고 채권은 일정 기간 내에 소각된다. 이로써 소액의 빚조차 갚을 능력이 안 되는 금융 취약계층 다수가 장기연체와 추심의 멍에에서 벗어나 재기할 기회를 얻게 됐다. 새 정부의 채무 탕감 조치는 금융 공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소멸시효 완성 채권 25조7천억 원어치를 올 연말까지 소각하기로 한 지난 7월 말 발표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장기소액 연체자 수와 채무액은 작년 말 현재 국민행복기금이 민간금융회사에서 사들인 채권 3조6천억 원을 갚지 못한 83만 명에다 민간금융회사나 대부업체, 금융 공공기관에 2조6천억 원을 갚지 못한 76만 명을 합한 수치다. 1인당 평균 연체 원금과 연체 기간은 각각 450만 원, 14.7년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60세 이상 고령자 등 사회 취약계층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들은 금융회사가 대부업체 등에 부실채권을 재매각하는 과정에서 끝없이 추심의 고통에 시달려왔다. 정부는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내년 2월부터 재산·소득·금융·과세 등 증빙 자료를 제출받는 형식으로 채무 탕감 신청을 받은 뒤 심사해 대상자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는 이번 채무 탕감에서 정부의 재정 투입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2013년 도입된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채권은 소각해도 추가 재원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민간금융회사 등이 보유한 2조6천억 원의 채무 소각에 필요한 재원과 관련해 금융위는 비영리재단법인 형태로 한시 기구를 만들어 시민·사회단체 기부나 금융권 출연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금융권의 출연을 받는 것은 대출 심사 때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데 대해 금융회사가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란 것이 금융위의 설명이다. 채무 탕감 과정에서 국민 세금 투입이 없는 것은 다행이지만, 민간금융사들의 부담이 불가피해 이들이 불만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은 복지 국가가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전 정부들도 그렇게 한 적이 있다. 더욱이 가계부채가 1천400조 원을 넘어 많은 가계가 고통받고 있고 경제성장까지 저해 받는 현재 상황에서 정부가 상환 불가능한 장기소액 채무를 적절히 탕감해주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채무 재조정이 아닌, 원금까지 완전히 탕감해 줄 경우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나라가 대신 해결해준다'는 그릇된 인식을 채무자에게 심어줄 우려가 있다. 따라서 탕감 심사 과정에서 상환능력이 있는데도 이를 감추고 신청하는 '도덕적 해이' 사례는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정부가 부정감면자 신고센터를 운영해 재산이나 소득을 은닉하고 채무 탕감을 받는 채무자가 나오면 감면조치를 무효로 하고, 신고자를 포상하기로 한 것은 그런 점에서 잘한 일이다. 부정감면자로 밝혀지면 신용정보법상 '금융 질서 문란자'로 등록돼 최장 12년간 금융 거래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은 신청자들이 반드시 알아둬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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