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이름엔 '소수자'로 표현해 논란…'성별중립화장실' 도입 검토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서울시가 '제2차 인권정책 기본계획' 초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개선정책을 담았다.
그러나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정책 이름에는 '소수자'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반대 세력의 비난을 피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 29일 공청회를 열어 '제2차 인권정책 기본계획' 초안을 공개했다.
서울시 인권정책 기본계획은 '서울특별시 인권기본조례'에 따라 5년마다 세우는 것으로, 이번 계획은 1차 기본계획(2013∼2017)에 이어 두 번째로 나왔다. 앞으로 5년간 시 인권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관련 정책을 마련하는 밑그림 역할을 한다.
공청회를 앞두고 서울시 기본계획에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내용이 어느 정도 포함될지에 관심이 쏠렸다. 서울시가 3년 전 박원순 시장의 공약이었던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성소수자 관련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3년 발표한 1차 인권정책 기본계획에 이미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해소'를 담았다. 서울시 직원을 대상으로 한 인권 교육 때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포함하고, 차별 실태조사를 해 인권 증진 정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4년 12월 기독교계의 거센 반대 속에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담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선포가 무산되면서 서울시 1차 계획의 취지는 퇴색된 상황이다.
당시 인권헌장에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명시해야 하는지를 두고 시민위원들 사이에선 격론이 벌어졌다. 합의에 실패한 시민위원들은 표결을 통해 60표 대 16표로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명시하자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서울시는 만장일치에 의한 합의로 도출된 안이 아니고, 시민위원 164명 중 절반 이상이 불참하거나 퇴장해 정족수에 못 미쳤다며 투표를 무효화하고 인권헌장을 폐기했다. 성소수자단체는 서울시청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며 인권헌장 선포를 촉구했으나 서울시의 폐기 결정을 돌리지 못했다.
2차 계획에 서울시는 공공시설 이용과 관련한 성소수자 차별 대책을 마련하고, 성소수자 상담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공공시설에서 성소수자 행사 대관을 거부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어 서울시 차원의 지침을 마련해 차별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런 세부 내용을 담고 있는 정책명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편견·차별 개선정책 추진'이다. '성소수자'라는 용어 대신에 '소수자'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다.
공청회에선 이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소수자로 차별받는 집단을 폭넓게 부를 수 있겠지만, 특히나 극심한 혐오와 차별의 대상인 성소수자는 제대로 호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성소수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호명하는 데서부터 인권정책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박한희 변호사는 "1차 인권정책 기본계획의 정책 이름에는 '성소수자'가 나왔는데, 2차 계획에선 '소수자'로 바뀌었다"며 "서울시의 의지가 약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공공시설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시범 운영하겠다는 방침도 2차 계획에 담았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 장애인과 활동보조인, 성소수자 등이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성별중립화장실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백악관에 설치한 뒤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도 도쿄올림픽 때 성별중립화장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범죄 해소 대책, 아르바이트 청소년 노동권 보호,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책을 핵심 과제로 올린 것도 눈에 띈다.
인권정책 기본계획 연구책임자인 이현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서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수직 노동자, 비정규직, 청소년, 미등록 거주민, 성소수자 관련 이슈를 구체화해 과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다음 달 인권위원회 심의를 거쳐 2차 인권정책 기본계획을 확정한 뒤 내년 1월 시민들에게 발표할 계획이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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