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때 입은 옷 넘기면서도 불안감 안 보여…"몰카 찍으러 입국"
다음 공판은 내달 22일…판결은 내년 중순께나 나올 듯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하는데 관여한 동남아 출신 여성들이 관련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현지 경찰의 증언이 나왔다.
이는 몰래카메라 촬영이라는 북한인들의 말에 속았다는 피고인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1일 국영 베르나마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슬랑오르 지방경찰청 소속 수사관 나스롤 사인 함자(38)는 전날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베트남 국적 피고인 도안 티 흐엉(29·여)이 범행 당시 입은 옷을 넘기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흐엉은 김정남이 살해된 지 이틀만인 지난 2월 15일 범행 현장인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돌아왔다가 체포됐다.
그 직후 경찰은 흐엉을 앞세워 그가 묵고 있던 공항 인근 호텔을 수색해 'LOL(laugh out loudly)'이라는 글이 쓰인 티셔츠와 미니스커트 등을 압수했다.
나스롤은 김정남 암살범이 입은 옷으로 당시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이 옷들이 객실 내에 방치돼 있었고, 숨기려 한 흔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흐엉에게 체포전 옷을 처분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고 보느냐는 피고인측 변호인의 질문에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흐엉은 말레이시아 입국 이유를 묻는 수사관들에게 "몰래카메라를 찍으려고 왔다"고 진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흐엉과 함께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 국적자 시티 아이샤(25·여)에게서도 특별히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다.
시티는 도안이 체포된 이튿날 새벽 쿠알라룸푸르 교외의 한 호텔에서 붙잡혔으며, 객실 문을 열어 두는 등 무방비한 상태로 경찰의 방문을 받았다. 객실 내에서는 VX 신경작용제에 오염된 옷가지가 발견됐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흐엉과 시티에게 김정남을 살해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고 지난 3월 1일 살인 혐의로 기소했지만, 이들은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들의 말에 속았을 뿐이라며 줄곧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말레이시아 현지법은 고의로 살인을 저지를 경우 사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기에 유죄가 인정될 경우 두 사람은 교수형에 처해질 수 있다.
흐엉과 시티의 손에 VX 신경작용제를 발라주며 김정남을 공격하도록 지시한 인물로 확인된 북한인 리재남(57), 홍송학(34), 리지현(33), 오종길(54) 등 4명은 범행 당일 출국해 북한으로 도주한 상태다.
다음 공판은 내달 22일 열릴 예정이다. 판결은 일러야 내년 중순께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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