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성 캐릭터 탄생시키며 시청률 14.3%로 종영…시즌제 요구 이어져
"성범죄 책임, 피해자에 전가하려는 분위기 짚고 싶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성범죄 자체가 힘든 이야기인데 주인공마저 마냥 정의롭고 선하면 드라마가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정의감보다는 자기 밥그릇을 먼저 챙기고, 다소 코믹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게 드라마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적중했다. 한국 드라마에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탄생했다. '마이듬 검사'.
지난달 28일 종영한 KBS 2TV '마녀의 법정'의 타이틀 롤인 마이듬은 정의감이나 사명감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출세에 관심이 많은 좌충우돌 여성 검사다. 시청률 10%가 너무나 어려운 시대에 '마녀의 법정'은 14.3%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자연스럽게 시즌제 요구가 나온다.
'마녀의 법정'의 정도윤(46) 작가는 3일 "처음에는 동시간 꼴찌만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는데 잘돼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 '마녀 검사'의 탄생…"마이듬은 시인 이름서 차용"
마이듬은 '안티 히어로' 같은 캐릭터다. 결과적으로는 성범죄자들을 잡아내 처벌을 받게 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도를 걷지는 않기 때문이다. 승소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해자의 처벌을 위해서라면 피해자의 인권 정도는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같은 캐릭터는 드라마의 전통적인 여주인공상을 배반한다.
정도윤 작가는 "제목처럼 '마녀'같은 점이 있는 캐릭터"라며 "그게 더 현실적이지 않냐"며 웃었다.
"당연히 검사에게 정의감이 있어야 하지만, 마이듬은 정의감보다 나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요?(웃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입장에서 가장 골치 아팠던 것은 성범죄를 시청자가 굉장히 피곤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무겁고 불편한 거죠. 어떻게 하면 덜 피곤하게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마이듬 같은 속물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습니다."
'마이듬'이라는 이름은 시인 김이듬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예전에 김이듬 시인을 만났을 때 이름이 너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주인공 이름을 작명하면서 허락도 없이 가져다 썼습니다. 최근에 그분을 만나 '허락도 없이 써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용서해주셨어요.(웃음) '마이듬'이라는 이름에 뭔가 특이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마이듬' 캐릭터는 배우 정려원과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정 작가는 "정려원이 너무 잘했다. (대본의) 모자란 부분을 너무 잘 채워줘 고맙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정려원 씨의 매력을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마이듬 캐릭터와 한몸처럼 붙었습니다. 정려원 씨가 해줘서 코믹함도 훨씬 더 잘 살았고요. 정려원 씨가 타고난 세련된 이미지가 있는데 '마이듬'을 맡아서는 그런 이미지 대신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입했어요. 패셔니스타인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액세서리 하나 착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돌진하고 보는 마 검사의 옆에는 차분하고 따뜻한 '여진욱 검사'가 있었다. 윤현민이 이 '여 검사'를 맡아, 정려원과 기대 이상의 앙상블을 빚었다.
정 작가는 "마검사는 속물적으로 가는 대신, 피해자들의 진술을 잘 들어줄 남자 주인공이 필요했다"며 "그래서 정신과의사 출신 초임 검사 여진욱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윤현민 씨 전작들을 봤는데 목소리와 억양이 좋아서 대사 전달력이 너무 좋더라고요. 역시나 이번에도 여진욱의 어려운 대사들이 귀에 착착 와서 붙었어요. 여주인공 캐릭터가 세서 남자 주인공 캐릭터의 비중이 없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윤현민 씨가 너무 잘해줘서 하나도 안 밀렸어요."
작은 에피소드 하나. 남자 주인공의 성은 원래 '여'씨가 아니었다.
"드라마 제목이 '마녀의 법정'이라, 남자 주인공의 성을 '여(녀)'로 바꾸면서 '마 검사' 못지않게 남자 주인공인 '여 검사'도 놓치지 않겠다는 제 의지를 담았어요. '마녀'가 '마이듬과 여진욱'을 줄인 말도 된다고 저 혼자 생각한 거랍니다.(웃음)"
◇ "어떻게 하면 선정적이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낼까 고민"
'마녀의 법정'은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에서 기존 드라마의 고정관념을 파괴해 포인트를 주는 동시에, 우리 주변에서 늘 발생하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범죄를 다뤄서 공감대를 높였다.
정 작가는 "성범죄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준비했지만 전문용어로 '삽질'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성범죄는 매일같이 뉴스에 나오잖아요.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죠. 하지만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100% 각색을 해야 했어요.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도 그렇고, 성범죄 재판의 패턴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드라마로 만들려면 가상의 이야기를 많이 넣어야 했어요. 성범죄 공판을 많이 취재하고 여러 버전으로 기획안을 만들어봤지만 이야기가 잘 안 풀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선정적이지 않게, 감정적인 피로도를 줄여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마녀의 법정'을 준비하던 중 이야기가 잘 안 풀리자 정 작가는 2014년 SBS TV 2부작 드라마 '엄마의 선택'을 통해 성범죄 이야기를 먼저 다뤘다. 그리고 3년 뒤 '마녀의 법정'으로 자신의 오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마녀의 법정'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건 시청자의 몫인 것 같아요. 저는 드라마를 보는 순간만큼은 시청자가 재미있게 몰입해서 보길 바랄 뿐이에요. 오히려 이 드라마를 하면서 성범죄 이야기를 이용해서 잘 되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유일하게 피해자에게 피해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범죄가 바로 성범죄라는 사실은 짚어주려고 했어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성범죄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꼬집고, 아동 성범죄의 형량이 대중적 정서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한 것도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정 작가는 "아동 성범죄 에피소드를 다룰 때는 연출자들도 너무 힘들어했다"며 "아동 성범죄야말로 엄하게 처벌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2009년 KBS 미니시리즈극본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은 정 작가는 '구미호 - 여우누이뎐'과 '동안미녀' 공동집필을 거쳐 '마녀의 법정'으로 미니시리즈 단독 집필 데뷔를 했다.
'마녀의 법정'의 시리즈 제작 가능성에 대해 정 작가는 "고민이 많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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