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직원의 평균 임원 승진 나이 '51.4세'와 대조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연말을 맞아 대기업의 임원 인사가 속속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오너(총수) 일가들의 고속 승진이 눈에 띈다.
주요 대기업 오너가(家) 자제들은 30대에 상무, 부사장에 오르는 등 일반 월급쟁이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초고속 트랙'을 밟고 있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단행된 현대중공업그룹 임원 인사에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35) 현대중공업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정 부사장은 또 계열사로 선박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까지 맡아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정 부사장은 전무를 단 지 2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32) CJ 미국지역본부 마케팀당당 상무는 올해 3월 부장 2년 만에 상무 대우로 승진한 데 이어 불과 8개월 만에 '대우' 꼬리를 떼고 정식 상무가 됐다.
또 이경후 상무의 남편인 정종환(37) CJ 미국지역본부 공동본부장도 상무가 됐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동생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의 장남인 허철홍(38) ㈜GS 부장은 3년 만에 상무로 승진하며 GS칼텍스의 경영개선부문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장남 구동휘(35) LS산전 이사는 1년 만에 상무로 승진했고, 구자명 전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아들 구본혁(40) LS니꼬동제련 전무는 3년 만에 부사장에 올랐다.
이에 대해 LS그룹 관계자는 "LS에서는 오너가 자제라 해도 사원, 대리 등의 직급부터 밟아 올라가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사에서 상무, 상무에서 전무로 올라갈 때 몇 년이 지나야 한다는 체류연한도 이미 폐지했다"며 오너 일가에 국한된 특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장남 이규모 상무보도 2년 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재벌 오너 일가의 초고속 승진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들의 승진이나 보임, 더 나아가 경영권 승계가 적절한 검증 과정을 거쳐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올해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100대 그룹 가운데 오너 일가가 임원으로 근무 중인 77개 그룹, 185명의 승진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입사 후 임원에 오르는 데 걸리는 기간이 평균 4.2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29.7세에 입사해 33.7세에 임원 직함을 달았는데 이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30대 그룹 일반 직원의 임원 승진 평균 나이인 51.4세와 견줘 무려 17.5년이나 빠른 것이다.
올해 인사에서도 오너 일가의 자제들은 30, 40대의 나이에 상무, 부사장 직함을 달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융기관의 경우 임원에 대한 적격성 심사요건을 놓고 이를 충족하는 지 심사를 하지만 사기업은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적절한 검증 절차가 없으면서 오너 일가 자제에 대해서만 임원 승진이 빠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결국 오너 일가들이 경영에 관여하면서 성과가 안 좋을 경우 투자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식으로 자본시장이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젊은 사람이 더 출중한 경영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만큼 고속 승진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경영자로서 이후에 성과를 보이지 못할 경우 오너 일가라 해도 경영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기업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능력 없는 오너 일가 경영자에 대한 필터링이 과거에 비해 더 잘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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