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권 없이 회의 참석해 발언…여전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퇴진한 왕치산(王岐山·69)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여전히 중국 최고지도부 회의에 참석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일 왕치산 전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퇴진했는데도 의결권 없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은 통상 일주일에 한차례 회의를 열어 중국의 핵심 사안들을 의결하는데 이 자리에 왕치산이 참석하고 있다는 의미다.
왕치산은 19차 당대회에서 7상8하(七上八下·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 내규에 따라 5년간의 정치국 상무위원 임기를 마치고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등 모든 당내 직책에서 물러난 상태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왕치산에게 다시 국가부주석 등 당정 요직을 맡기기 위해 사전 조율 중인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정치평론가인 천다오인(陳道銀) 상하이 정법대 교수는 "정치적 안정성과 연속성을 강화하려는 의도일 것"이라며 "그가 의결권을 가진 정치국 상무위원회 멤버는 아니지만 선배, 또는 고문으로서 발언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치산의 상무위원회 참석이 새롭기는 하지만 전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군부 실력자였던 양상쿤(楊尙昆·1907∼1998)은 1988년 국가주석이 되기 전 정치국원 신분으로 상무위원회 참석을 허용받은 적이 있다.
왕치산이 퇴진 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또다른 신호는 그가 당정 지도부의 본부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 사무실을 두고 계속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왕치산의 상무위원회 참석은 특히 내년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현재 공석인 국가부주석 직에 임명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왕치산은 지난 5년간 시 주석의 최대 치적인 반부패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앞서 1990년대 금융위기에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에 이르기까지 특급 소방수로 활동했던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왕치산을 놓지 않기 위해 이전과 다르지만 동등한 직급의 역할을 맡기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를 통해 반부패 투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내보내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비(非) 정치국 상무위원의 국가부주석 임명 역시 선례가 있다. 당 원로인 왕전(王震)이 정치국원에서 물러난 이듬해인 1988년 국가부주석이 됐고, 그 뒤를 이어 공산당원이 아니었던 민족자본가 룽이런(榮毅仁)이 국가부주석 자리를 맡았다.
국가부주석은 당시에는 실권이 없는 유명무실한 직위였다. 하지만 1998년 후진타오(胡錦濤)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국가부주석을 맡게 되면서 차기를 예약한 최고지도자가 정치수업을 받기 위해 가는 자리로 격상됐다.
시 주석 역시 2012년 총서기가 되기 직전 5년간 국가부주석으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국가부주석에 정치국원인 리위안차오(李源潮)가 임명되면서 다시 중요도가 약화됐다. 리위안차오는 19차 당대회에서 7상8하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정치국원 자리도 지키지 못한 채 물러났다.
반면 왕치산은 퇴임 후에도 공식활동을 소화하며 관영매체에 계속 이름이 노출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장관 등으로 구성된 칭화(淸華)대 경제관리학원 해외 자문위원들을 맞아 환영만찬을 주재하기도 했다.
인민일보 산하 잡지 '환구인물'이 왕치산의 과거 업무 성과를 극찬하는 글을 올린 것도 왕치산 재임용을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베이징의 정치평론가 장리판(章立凡)은 "왕치산의 재중용설은 현역에서 물러났거나 반(半) 퇴임한 당 원로들이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1980년대 원로정치의 부활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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