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호흡기 의존 불구 족쇄…유족 "인간 존엄 무시…개 취급"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호주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원주민 수감자에게 발목 족쇄를 채워 유족들이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찾아볼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3일 시드니모닝헤럴드 일요판인 더 선 헤럴드에 따르면 교도소 수감 중 위급한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에게 생의 마감 하루 전까지 족쇄를 채웠던 사실이 유족에 의해 공개됐다.
원주민인 에릭 휘터커(당시 36세)의 가족은 지난 7월 3일 오후 에릭이 위험하다는 통보를 받고 병원을 찾았다가 이 모습을 발견하고 호주 사회에 고발했다.
가족들은 "병실로 들어갔을 때 에릭이 의료기기에 의해 목숨이 유지될 뿐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며 에릭의 모습을 살피려고 다리 부분을 덮은 담요를 들었을 때 양 발목 위로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족쇄 제거를 요구하는 가족과 '정당한 규정'이라는 교도관들 간 언쟁이 벌어졌고 약 40분 후 윗선의 승낙으로 족쇄가 풀렸다.
에릭은 족쇄가 풀린 뒤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다음 날 낮 1시께 생명유지장치의 전원이 꺼지며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죽어가는 원주민에 대한 존엄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며 "그는 마치 일어나 달아날 수 있는 잡종견처럼 다뤄졌다"라고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교정당국에 따르면 에릭은 사망 1주일 전인 6월 27일 도난품 및 공공장소 내 흉기 소지, 법정 미 출석 혐의로 체포돼 기소됐다. 에릭은 마약 중독자 및 노숙자로 익히 경찰에 알려진 터였다.
에릭은 체포 사흘 후인 6월 30일 저녁 시드니 북서부의 민간운영 시설인 파클리(Parklea) 교도소로 옮겨졌고 주말인 관계로 보안심사 없이 독방에 수용됐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지기 직전인 7월 2일 오전 교도관들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해 소란을 피웠고, 곧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병원 이송 직전 상황과 관련해 가족들은 에릭이 감방 안에서, 혹은 운동장에서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에릭은 병원 도착 직후 상태가 악화했고 심장박동 정지로 산소호흡기가 채워졌다. 뇌 검사 결과로는 동맥류와 출혈이 나타났다.
수갑은 병원에 도착한 뒤 13시간 만에 벗겨졌지만, 족쇄는 14시간이 더 지나 가족들의 항의로 제거됐다.
교정당국은 규정상 병원 내 수갑이나 족쇄의 사용은 호송 교도관의 판단에 달렸다면서도 당시 에릭 상태로 보면 좀 더 일찍 제거했어야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시드니공대(UTS)의 원주민 문제 전문가인 탈리아 앤서니 부교수는 "이번 일이 발생한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며 병상 에릭 모습이 "사슬에 묶여 있는 19세기 원주민 남성들 모습을 담은 사진을 상기시킨다"라고 이 신문에 말했다.
cool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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