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지도를 그리다…인간 조건의 개선을 위한 '진화실험'

입력 2017-12-04 08:31   수정 2017-12-04 09:38

선악의 지도를 그리다…인간 조건의 개선을 위한 '진화실험'

신간 '네이버후드 프로젝트'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문화는 인간만의 것일까.

예전엔 선뜻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많았겠지만 요즘은 여러 연구 성과들로 인해 사정이 달라졌다.

일본원숭이들이 모래가 묻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고 모래가 섞인 곡식 낱알을 바닷물로 걸러서 먹는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기술은 후대로까지 전승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할 뿐 아니라 사용법을 다음 세대에 전수한다.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의 까마귀는 주식인 굼벵이를 나무 속에서 꺼내는 데 식물 잎으로 제작한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실 까마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뛰어난 사회성과 적응성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까마귀는 한번 도시에 적응하고 나면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로는 이주해도 인근 시골로는 옮겨가는 법이 없단다. 도쿄 까마귀들은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녹색일 때 호두를 떨어뜨려 자동차 바퀴로 껍질을 깐 뒤 회수할 정도다.

신간 '네이버후드 프로젝트'(사이언스북스 펴냄)는 문화가 진화의 보편적인 산물이자 일부라는 전제 위에서 인간의 문화와 행동, 심리를 분석하고 이를 규정하는 인간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대부분 사람은 진화가 공룡, 화석, 인류의 기원과 관련 있는 자연적 현상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책은 자연이 아니라 인공물로 가득 찬 도시가 오늘날의 중요한 진화의 현장이라고 설파한다.

저자는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 뉴욕주립대학교 생물학과 인류학 교수다. 그는 현대 진화학의 주류 이론인 '유전자선택이론'에 반하는 '집단선택이론'을 주창해 논란의 한가운데 있다.

윌슨은 "진화론을 통해 인간 조건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 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신념을 실천에 옮긴다.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현장생물학자인 그는 이를 위한 현장연구의 무대로 핀치가 서식하는 갈라파고스 군도나 미어캣 둥지가 있는 아프리카 대신 자신이 20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인 미국 뉴욕주의 인구 5만명의 소도시 빙엄턴을 선택한다.

그는 여기서 공립학교 학생 대상의 설문조사를 시작으로 주민들의 핼러윈과 크리스마스 장식 조사, 차고세일 조사, 분실된 편지실험, 이웃사진 실험 등 과학적으로 고안한 갖가지 기발한 실험을 통해 주민들의 '친사회성'을 측정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나간다.

그리고 분석된 데이터들은 지리정보시스템(GIS)과 결합돼 드라마틱한 한 장의 지도로 만들어진다. 지도에서 빙엄턴은 '선의 언덕'으로 불릴 만한 뾰족한 봉우리들과 '악의 골짜기'라고 할 만한 깊은 골짜기들이 즐비한 산맥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선의 언덕은 건실한 시민이, 악의 골짜기는 공중도덕이 결여된 악당이 거주하는 지역을 의미한다.

윌슨은 언덕과 골짜기가 만들어진 원인을 찾고자 사회적 지원, 빈부의 차, 인구 밀도, 인종 구성 등이 주민들의 친사회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신뢰를 뜻하는 친사회성이 어떤 우호적 환경 속에서는 "은행 예금이 복리로 불어나는 것처럼"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이에 따라 그는 골짜기를 언덕으로 바꿔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책에는 이런 연구의 전후 사정과 결과는 물론 최근 빠르게 파급되면서 주변 학문들과 융합돼가는 진화학의 최신 동향까지 상세히 기술돼 있다.

윌슨의 연구는 나중에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BNP)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5년간의 연구 결과는 2009년 세계적인 학술지에 실려 화제를 낳았다.

윌슨은 집단선택이론의 주창자답게 인간 사회와 도시를 개미나 말벌 같은 사회성 곤충들이 이루는 군락과 유사한 '초유기체'로 파악한다. 그리고 초유기체의 기반이 되는 구성원들 간의 긴밀한 협력을 진화시킨 비밀이 바로 집단선택에 있다고 설명한다. 집단 내에서의 선택은 이웃을 희생시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악당을 선호하지만, 집단 간의 선택은 집단의 선인 협력과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개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윌슨의 프로젝트에서 도출된 의미심장한 결론 중 하나는 이렇다.

"지나친 부뿐만 아니라 지나친 가난도 신뢰를 해칠 수 있다."

황연아 옮김. 640쪽. 2만5천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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