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스위스 은행들이 일부 사우디아라비아 고객들의 계좌에서 포착된 수상한 흔적들을 당국에 신고하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4일 보도했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스위스 은행들은 지난주부터 변호사들을 통해 연방경찰청 산하 조직인 돈세탁 정보국에 의심스러운 계좌 변동 내역을 통보했다.
스위스 은행들은 향후 신고 건수가 수십 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위스 사법당국이 은행들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수색이나 계좌 동결 등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은 상태다.
스위스 검찰은 "규정에 따라 접수된 정보들을 분석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현재로서는 이와 관련된 형사적 절차는 개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위스 은행들의 이번 조치는 사우디 정부 당국이 왕족과 기업인을 포함한 200여명을 부패 혐의로 대거 체포하고 국내외 은행들에 해당 인물들의 명의로 신용이나 대여금고를 제공했는지를 밝혀줄 것을 요구한 데 뒤이은 것이다.
부패 척결을 지휘하고 있는 사우디의 권력 실세 모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처벌을 면해주는 대가로 이들로부터 최소한 1천억 달러를 회수할 것을 바라고 있다.
스위스 은행들은 이에 따라 부패 혐의자들이 계좌에서 거액의 현금을 인출할 경우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스위스 은행들에 들어온 사우디 고객들의 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은 30~50년이나 예치된 것이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예금 비밀주의를 자랑하는 스위스 은행들이 자진 신고에 나선 것은 법적인 책임을 염려한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스위스 은행들은 고객들의 정보를 보호하는 전통을 고수하려 애쓰고 있지만 돈세탁 및 부패 방지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서는 수상한 거래 내역을 반드시 당국에 신고해야만 한다.
빈 살만 왕세자는 국내 금융당국 관리들은 물론 서방 전문가들도 동원해 부패의 전모를 밝히고 처벌 수위를 정하기 위한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 측이 스위스 당국에 확보된 정보에 접근하려면 공식 요청 절차를 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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