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참사 전 같다"…발리 주민들, 대분화 공포 시달려

입력 2017-12-04 11:52  

"1963년 참사 전 같다"…발리 주민들, 대분화 공포 시달려
"약한 분화 뒤 한 달여만에 대폭발…이번에도 재연될까 우려"
위험지역 주민 5만9천명 피난…일부는 대피 거부해 피해 가능성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최고봉인 아궁 화산의 분화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현지 주민들은 여전히 대분화가 임박했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1천1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1963년 대분화 당시와 유사한 양상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4일 오전 현재까지도 아궁 화산 지하에선 강한 화산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이어진 일련의 분화에도 아직 분출되지 못한 에너지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이에 재난당국은 아궁 화산의 경보를 최고 단계인 '위험'으로 유지하며, 분화구 반경 8∼10㎞ 이내 주민을 대피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50여년전 대분화 당시 12살이었다는 주민 능아 트레스니(66·여)는 대피소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지금 상황은 그때와 거의 같다. 대규모 분화가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아궁 화산은 1963년 2월 소규모 분화가 발생한 뒤 그해 3월과 5월 대규모 분화를 일으켜 10억t 이상의 분출물을 뿜어냈다.
분출물은 완만한 분화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평소처럼 일상을 이어가던 화산 주변 마을 주민들을 덮쳐 1천100여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 산에선 이후로도 거의 1년간 화산 활동이 계속됐다.
트레스니는 "그때도 대규모 분화가 뒤따를 줄은 누구도 몰랐다"고 말했다.
역시 화산 기슭 마을에 살다가 대분화를 겪어야 했던 뇨만 시키(60)는 주변 주민 2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1년뒤 마을에 돌아갔을 때는 화산분화의 영향으로 토양이 굉장히 비옥해져 있었다며 그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고 덧붙였다.
발리 른당 지역 대피소에 수용된 뇨만 므르타(63)는 "그땐 지금처럼 사전 경고가 없었다"면서 자신의 경우 9살의 나이로 사흘 이상 걸어서야 구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발리 섬 각지에 마련된 213개 대피소에는 지난 2일 저녁 기준 5만9천61명의 주민이 대피해 있다. 이는 분화구 주변 위험지대에 있는 22개 마을 주민(10만명)의 약 3분의 2에 해당한다.
나머지 주민들은 생계수단인 가축을 방치한 채 몸을 피할 수 없다거나, 1963년 대분화 당시 피해를 보지 않은 지역에 산다는 등 이유로 대피를 거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 등 관계 기관은 이들을 전원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설득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화산 전문가들은 아궁 화산의 분화 양상이 실제로 1963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정확히 언제쯤 대분화가 잇따를지, 실제로 대분화가 일어날지를 완벽하게 내다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4일 오전 현재 아궁 화산 분화구에선 잿빛 연기 기둥이 1천m 높이로 완만히 솟고 있다.
수토포 푸르워 누그로호 BNPB 대변인은 "주변 공항의 운영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발리는 현재 분화구 주변 8∼10㎞를 제외하면 관광에 안전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호주 맥쿼리 대학의 화산학자인 헤더 핸들리는 "위험이 끝났다고 볼 수 없다"면서 "아궁 화산은 명백히 아직 활성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24살의 나이로 아궁 화산의 대분화를 겪었던 뇨만 아르세(77)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거대한 바위들이 떨어져 내렸다"면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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