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상 참작 인정되면 선처…지자체는 무조건 과태료·영업정지
업주 "속았는데 영업정지 가혹"…처벌 규정 다른 관련법들 정비 나서
(전국종합=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지난 5월 청주시 서원구의 한 음식점은 만 18세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다가 단속 나온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은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이 음식점 주인을 입건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1999년생인 이 청소년이 자신의 주민등록증에 적힌 출생연도를 1998년으로 위조해 주인을 속인 점이 고려된 것이다.
그러나 서원구는 이 음식점에 영업정지 6일의 처분을 했다. 현행법상 청소년에게 술을 판 음식점에는 무조건 영업정지나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처분은 법의 테두리에서 이뤄졌지만 충북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업주의 손을 들어줬다.
업주가 워낙 교묘하게 위조한 신분증에 속았다는 점을 검찰도 인정, 선처한 만큼 이 음식점이 불이익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술을 판 음식점에 대한 시·군·구청과 시·도 행정심판위원회, 검찰의 엇박자는 청소년보호법과 식품위생법이 서로 다른 처분 기준을 규정해놓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누가 봐도 위·변조했거나 남의 것이라고 볼만한 신분증을 제시한 청소년에게 술을 판 업주는 당연히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문제는 자신의 신분증을 교묘하게 위·변조했거나 얼굴이 비슷한 가족의 신분증을 제시, 어떤 업주라도 속을 만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요즈음에는 신분증을 사진으로 찍어 생년월일을 교묘히 편집한 뒤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고 이를 제시하는 청소년도 있다.
작년 3월 개정된 청소년보호법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하거나 법원이 선고유예 판결할 정도로 음식점 업주가 속을 만했다는 사정이 참작되면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식품위생법은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다면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행정처분 하도록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업주의 정상 참작 사유를 고려해 개정된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이 지난해 8월 시행됐지만,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영업정지 기간이나 과징금을 최대 10분의 9 감경하도록 규정했을 뿐 면책 규정은 따로 두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일선 시·군·구 위생지도 담당 부서는 위조 신분증에 속아 청소년들에게 술을 판 음식점에도 최하 6일의 영업정지 처분이나 200여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충북에서는 작년 8월 이후 이달 현재까지 위·변조한 신분증을 제시한 청소년들에게 술을 팔았다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음식점 주인 11명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가운데 5건은 업주 승소로 매듭지어졌고, 6건은 기각됐다.
6건은 음식점 주인이나 종업원이 제대로 신분증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이다. 반면 출생연도를 변조하거나 형제의 신분증을 제시하는 등 꼼꼼히 비교하지 않는 한 식별이 어려웠던 5건은 업주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이런 사정은 다른 지자체도 비슷하다.
서울의 각 구청은 신분을 속인 청소년들에게 술을 판 업주에게 행정처분하고 있지만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는 업주의 사정이 참작할만하다고 판단될 때는 행정처분을 취소하고 있다.
업주의 억울한 사정이 확인될 경우 시·군의 행정처분을 취소하는 것은 전북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업주의 잘잘못을 따져 억울함이 인정될 경우 처분을 취소한다"며 "두 법이 상충하고 법 조항도 다소 애매해 일선 시·군 담당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엇박자를 내는 두 개의 법규를 통일하기 위한 개정 움직임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지난 7월 청소년에게 속아 술을 판 영업자를 보호하는 취지로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위·변조 신분증에 속은 음식점 주인들이 검찰의 불기소 처분만 받으면 행정처분을 받지 않을 길이 열린다.
서 의원 측은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최근 법률 개정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이번 국회에서 청소년보호법과 엇박자를 내던 식품위생법이 개정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k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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