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신분증에 속아 술 팔았는데 영업정지…음식점들 "억울"(종합)

입력 2017-12-05 11:07  

위조 신분증에 속아 술 팔았는데 영업정지…음식점들 "억울"(종합)
청소년 술 판매 고의 아니면 검찰 선처…지자체는 무조건 행정처분
업주 "감별 못했다고 처벌은 가혹"…국회서 처벌 규정 정비 나서

(전국종합=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만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술을 판 음식점이 적발되면 지방자치단체 위생지도 부서 직원들은 골치가 아파진다.

물론 잇속을 챙기느라 미성년자들에게 무분별하게 술을 팔다가 적발되면 당연히 행정처분 대상이다.
문제는 감쪽같이 위조한 신분증을 제시한 청소년들에게 속아 술을 판 음식점들도 예외없이 영업정지 처분을 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
이런 경우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현행법상 처벌을 면하게 해줄 방법이 없다.
업주가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통해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부당한 행정처분인지를 가리기 위해 다툴 수는 있다. 그러나 술을 판 것이 확인되면 영업정지든 과징금 부과든 처분해야 한다.
이런 억울한 경우 식품위생법상 '선의의 피해자'인 음식점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한다.
혐의는 있지만 선처하겠다는 의미의 기소유예와 달리 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검찰에서 선처 받은 음식점 주인들은 영업정지 처분 등을 내린 시·도 지자체에 행정심판을 제기한다.
시·도 행정심판위원회도 정상 참작이 인정되면 음식점의 손을 들어준다.
청소년에게 술을 판 것이 확인되면 경위가 어떠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영업정지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시·군청이나 구청만 원성을 사는 셈이다.
청소년들에게 술을 판 음식점에 대한 시·군·구청과 시·도 행정심판위원회, 검찰의 엇박자는 청소년보호법과 식품위생법이 서로 다른 처분 기준을 규정해놓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누가 봐도 위·변조했거나 남의 것이라고 볼만한 신분증을 제시한 청소년에게 술을 판 업주는 당연히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문제는 자신의 신분증을 교묘하게 위·변조했거나 얼굴이 비슷한 가족의 신분증을 제시, 누가됐든 속을 만했다고 인정되는 경우다.

지난 5월 청주시 서원구의 한 음식점은 만 18세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다가 단속 나온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은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이 음식점 주인을 입건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1999년생인 이 청소년이 자신의 주민등록증에 적힌 출생연도를 1998년으로 위조, 만 19세라고 주인을 속인 점이 고려된 것이다.
그러나 서원구청은 이 음식점에 영업정지 6일의 처분을 했다. 이 처분은 법의 테두리에서 적정하게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충북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업주의 손을 들어줬다.
업주가 워낙 교묘하게 위조한 신분증에 속았다는 점을 검찰도 인정, 선처한 만큼 이 음식점이 불이익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작년 3월 개정된 청소년보호법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하거나 법원이 선고유예 판결할 정도로 음식점 업주가 속을 만했다는 사정이 참작되면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식품위생법은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다면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행정처분 하도록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업주의 정상 참작 사유를 고려해 개정된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이 지난해 8월 시행됐지만,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영업정지 기간이나 과징금을 최대 10분의 9 감경하도록 규정했을 뿐 면책 규정은 따로 두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속에 나서는 일선 시·군·구는 위조 신분증에 속아 청소년들에게 술을 판 음식점에도 최하 6일의 영업정지 처분이나 200여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충북에서는 작년 8월 이후 이달 현재까지 위·변조한 신분증을 제시한 청소년들에게 술을 팔았다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음식점 주인 11명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가운데 5건은 업주 승소로 매듭지어졌고, 6건은 기각됐다.
6건은 음식점 주인이나 종업원이 제대로 신분증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이다. 반면 출생연도를 변조하거나 형제의 신분증을 제시하는 등 신분증 식별이 어려웠던 5건은 업주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이런 사정은 다른 지자체도 비슷하다.

서울의 각 구청은 신분을 속인 청소년들에게 술을 판 업주에게 행정처분하고 있지만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는 업주의 사정이 참작할만하다고 판단될 때는 행정처분을 취소하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업주의 잘잘못을 따져 억울함이 인정되면 처분을 취소한다"며 "두 법이 상충하고 법 조항도 애매해 일선 시·군 담당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엇박자를 내는 두 개의 법규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지난 7월 청소년에게 속아 술을 판 영업자를 보호하는 취지로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위·변조 신분증에 속은 음식점 주인들이 검찰의 불기소 처분만 받으면 행정처분을 받지 않는 길이 열린다.
서 의원 측은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최근 법률 개정에 동의하는 분위기"라며 "이번 국회에서 청소년보호법과 엇박자를 내던 식품위생법이 개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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