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품·서비스 대금 부풀리고 엉터리 서류 제출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내가 이러려고 첫 흑인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은 4일(현지시간) 2013년 남아공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열렸던 당시 공금 횡령·유용이 난무했다고 보도했다.
남아공의 부패 감시기구 '퍼블릭 프로텍터'는 3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이스턴케이프 주(州)와 유관 단체들이 기본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비용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수백만 달러의 돈을 유용·횡령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당시 각 지방차지 단체는 장례식 사흘 동안 조문객을 수송한 업체에 600만랜드(약 4억8천만원)를, 음식·서비스 제공 업체에 3천100만랜드(약 24억원)가 넘는 돈을 각각 지불했다.
그러나 담당자들은 구입 물품 대금을 허위로 적거나 이용하지도 않은 서비스에 대해 청구서를 제출해 돈을 타 낸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발주인에 담당 공무원이 아닌 물품 공급 업체 직원이 서명한 엉터리 서류도 발견됐다.
당시 남아공은 장례 비용 3억랜드(약 240억원) 상당을 개발 기금에서 충당했는데, 이는 원래 '진흙투성이 학교 위생시설 교체' '병원 개보수' 같은 사업에 배정됐던 돈이다.
퍼블릭 프로텍터의 부시 음케바네는 기자회견을 열어 "매우 두렵고 간담이 서늘하다"며 "장례식을 이러한 방식으로 활용하다니 무척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대체로 혼란 속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했지만, 집권 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이 돈을 사용하도록 지시한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맹비난했다.
음케바네 "발신인이 ANC로 된 청구서도 있는데, 돈만 지급되고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이컵 주마 대통령에게 특별 조사팀을 활용해 추가 혐의를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생전 '살아있는 성자'로 불렸던 만델라는 남아공의 흑인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민족회의'를 이끌며 투쟁하다 무려 2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90년 석방된 만델라는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를 통해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됐고, 이후 용서와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해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다.
만델라는 2013년 12월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당시 국장으로 진행된 장례식에는 아프리카 각국 정상을 비롯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먼드 투투 주교, 영국의 찰스 왕세자,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 미국의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등 유명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시신이 안치된 정부청사에도 조문객 10만여명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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