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첫 메달리스트 양태화 "민유라-겜린 '아리랑'에 나도 뭉클"

입력 2017-12-06 06:11  

피겨 첫 메달리스트 양태화 "민유라-겜린 '아리랑'에 나도 뭉클"
2002년 솔트레이크올림픽서 이천군과 함께 사상 첫 아이스댄스 출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한국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의 민유라(22)-알렉산더 겜린(24) 조가 평창올림픽 출전권을 극적으로 손에 넣은 지난 9월 독일 국제빙상경기연맹(ISU) 네벨혼 트로피 현장에서 선수들 못지않게 감격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 대회에서 ISU의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로 심판진에 포함됐던 양태화(35) 코치다. 양 코치는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이천군과 함께 한국 아이스댄스 선수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은 선수이기도 하다.
지난 3일 서울목동실내경기장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대표 2차 선발전에서 민유라-겜린 조의 경기를 지켜본 양 코치는 "네벨혼 대회에서 유라가 울 때 나도 같이 울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민유라-겜린 조가) 쇼트 댄스에서 실수를 해서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런데 프리 댄스에서는 연습도 차분하게 잘하더니 실전에서도 점점 잘해서 하이라이트로 치달을 땐 저도 뭉클하더라고요. 더구나 아리랑이었으니까요. 티 내지 않고 리뷰하느라 힘들었습니다."
현재 프리랜서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양태화는 아이스 댄스뿐만 아니라 한국 피겨 전체에도 '살아있는 역사'다.
초등학교 때 스케이트를 처음 신고 선생님의 권유로 아이스댄스에 입문한 양태화는 이천군과 짝을 이뤄 출전한 1999년 강원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3년 후 솔트레이크시티에서도 아이스댄스 역사상 처음으로 극적인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비록 올림픽 무대에서는 최하위에 머물며 세계의 벽을 절감했지만 아이스댄스도 최고의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양 코치는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에서 웜업 하다가 리프트 도중 떨어져서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올림픽 준비를 마음껏 하지 못했다"며 "솔직히 제일 힘들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스무 살의 나이에 올림픽 무대를 경험한 양태화는 2006년, 2010년 올림픽까지도 도전하고 다음 올림픽에선 톱 5에도 들어야겠다는 포부를 가졌지만 본의 아니게 올림픽 시즌을 마치고 피겨를 접어야 했다.

"당시 파트너(이천군)와 7∼8년을 함께 했는데 올림픽 무렵에 트러블이 좀 있었어요. 올림픽 앞두고 서로 예민해진 데다 욕심과 부담도 많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렸죠. 시즌 마치고 파트너가 미국으로 떠나버렸는데 어머니도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경황도 없다 보니 피겨를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원 없이 타다가 은퇴한 것이 아니다 보니 지금도 아쉬움이 많다.
유망주들을 지도하면서, 그리고 ISU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로 국제무대에서 한국 피겨의 위상을 높이면서 선수로서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양태화-이천군 이후 한국 아이스댄스는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민유라-겜린이 12년 만에 올림픽 진출을 이뤄냈으나, 대표 선발전에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저변이 얕다.
"김연아 덕분에 제가 선수 할 때와 비교하면 선수층이 많이 늘고 환경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도 아쉬운 부분은 많죠. 링크장 숫자나 시스템도 변한 게 없고요. 특히 아직 남자 선수들이 적기도 하고, 비용이나 링크 대관 등에서 어려움이 있어서 아이스댄스는 입문하기가 더 어려워요."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태극기를 달고 당당하게 출전하는 후배 민유라-겜린이 양 코치는 너무 대견하다.
"올림픽에서 톱 5, 톱 10 이런 부담 없이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스댄스는 연륜이 쌓일수록 실력이 늘기 때문에 정상급 선수들은 모두 이전에 두세 번 올림픽 참가경험이 있는 선수들이에요. 민유라와 겜린도 평창올림픽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더 큰 목표를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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