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엔의 고위급 인사가 5일 전격 방북을 했다.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은 베이징을 거쳐 이날 평양에 들어가 나흘간 북한에 머문다. 지난달 29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인 '화성-15'형을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한 이후 미국이 해상봉쇄와 선제타격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다시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유엔 고위급 인사의 방북은 2010년 2월 당시 린 파스코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과 2011년 10월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HCA) 발레리 아모스 국장에 이어 6년 만이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도 재임 시절인 2015년 5월 개성공단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북측이 돌연 방문 허가를 철회해 무산됐으며, 같은 해 11월에도 방북을 추진했지만 역시 무산됐다. 당시 미국 등 일부 국가의 반대도 영향을 미쳤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4일 기자들에게 북한이 지난 9월 유엔 총회 기간에 초청했고, 지난주 말 방북이 최종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어렵게 성사된 만큼 결실을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방북한 펠트먼 사무차장은 리용호 외무상을 비롯한 외무성 고위 당국자들과 노동당 국제부 인사들을 두루 만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현지에 파견된 유엔 관계자와 제3국 외교단을 만나고 유엔 프로젝트 현장도 방문한다고 한다. 최악의 위기에 처한 북핵 문제의 돌파구 마련을 위한 북·미 간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지가 최우선 관심사다. 그동안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해왔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럴 준비가 돼 있다는 얘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방북에서 북측과 얘기가 잘 되면,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방북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면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이번 방북이 북한의 초청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특히 지난달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였는데도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주지 않으면서 '중국의 중재 역할'을 부인한 만큼, 그 대안으로 유엔 사무총장에게 그런 역할을 요청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큰 기대를 걸기보다는 차분히 지켜보는 게 좋을듯하다. 펠트먼 사무차장이 획기적인 어떤 해법을 지닌 것도 아니고, 북한도 어떤 해법을 갖고 초청한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미국이 유엔에 '중재'를 원하기는커녕, 방북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인 점을 고려하면 그가 어떤 능동적인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대북 원유공급 차단과 국제사회의 모든 대북 외교·교역 관계 단절 등을 요구하면서 북한을 옥죄려는 시도에 제동을 거는 것으로 받아들일 법하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을 존중하더라도, 유엔은 유엔 대로 역할이 있다. 파국을 부를 북한의 '핵 폭주'를 용인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단호한 의지를 전하는 한편, 북핵 문제 등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을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북미 간 극한 대치 국면에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중재 역할은 못 해도, 거의 모든 대화 채널이 끊긴 상황에서 메신저 역할만 해도 의미가 있다. 무슨 성과가 있겠느냐며 방북의 의미를 미리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북한이 어떤 의도로 초청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대화 가능성을 일축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전면 봉쇄 작전의 예봉을 흩트리려는 것일 수도, 실제로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 타진을 위해 유엔의 중재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이번 방북은 지난주 러시아 하원 의원 대표단의 방북과 대동소이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면담에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만 협상에 나서겠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우리 외교부는 "북한의 도발과 위협이 중단돼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단합된 의지가 전달되어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의 길로 복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더는 국제사회의 인내를 시험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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