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흔들리면 국민이 흔들리고 분열"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정부가 대북정책과 한미동맹에서 일관되고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은 6일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제1차 한중 고위지도자 아카데미(21세기 한중교류협회·주한 중국대사관 공동주관) 강연에서 "정부의 정책이 흔들리면 국민이 흔들리고 분열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반 전 총장은 "한미동맹은 재확인되고 있다"면서도 "양국이 이전 수준의 동맹과 신뢰를 회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우리 정부가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북한을 대할 때 강하게 할 때는 강하게 하고 부드럽게 할 때는 부드럽게 하는 것이 좋겠다"며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 전 총장은 "언젠가 문 대통령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힘이 없다'고 한탄했는데 얼마나 답답하면 한탄을 했을까 생각하면서도 안보 문제는 우리가 직접 당사자이니 '내가 하겠다, 우리가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는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미중이 한국을 제쳐두고 북한 문제에서 대타협을 도출할 수 있다는 이른바 '빅딜론'에 대해서는 "진앙지가 키신저 박사로 알려져 있어서 11월 초 미국에서 만나 한 시간 대화를 했다"며 "키신저의 말씀은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자신의 현실주의 정치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비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키신저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한국과 상의 없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중국과도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과 중국의 입장이 분명히 반영돼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반 전 총장은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는 북한의 요구에 대해 "국제사회가 전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받고 그것을 계기로 미국과 담판하겠다는 것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사무총장 시절 "남북문제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북한에 가려고 날짜까지 합의하고 발표가 됐는데 북한 당국이 하루, 이틀 전에 취소해서 못 간 적이 3차례"라고 전했다.
그는 또 리비아 카다피의 말로를 보며 북한이 핵보유 의지를 굳히게 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카다피를 생전에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는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42년간 독재를 하고 기행을 해 국민과 아프리카 지도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많이 당했다"며 "핵이 없어서 망했다는 것은 공연히 하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그는 "남아공이 핵을 포기해서 망했나? 아프리카 1, 2위 지도국이 됐다"며 "수천 년 인류 역사에서 한나라가 전세계를 상대로 싸워 이긴 적이 없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향해) 똑같은 메시지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반 전 총장은 한국 내 일각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에 대해 "북한은 제재 속에 살지만 우리는 국제사회의 조그만 제재에도 어마어마하게 잃어버리는 상황"이라며 "제재가 무서워서라기보다 한미동맹의 핵우산 보호 하에 있으니 서둘러 무책임하게 거론하는 것은 우리의 국제 위상에 비춰도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중관계와 관련, "11월 키신저와 만났을 때 그분 말씀은 미중이 이념이나 행태가 많이 다른 것은 사실이나 이미 세계의 지도국으로서 책임을 공유하고 있어 전쟁을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제 생각도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간의 방법론적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북핵을 해결해서 한반도를 비핵화하겠다는데 미중간 전략적 이해관계가 한 치의 차이도 없다"며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장이 아니라 협력과 공존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이 지난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시 주석이 '대문에 불이 나면 집이 위험해진다'는 중국 속담을 언급했다고 소개하며 "북핵이 대문의 불이 될 수 있는 것이니 대문의 불이 중국에 영향을 안 미쳤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반 전 총장은 직업 외교관 출신이 아닌 인사들이 잇따라 주요국 주재 대사로 발탁된데 대해 "학문적·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교라는 것이 75%는 아주 건전한 상식선에서 이뤄지고 25%는 전문성이 요구된다"며 "문제가 그야말로 심각하게 벌어졌을 때는 25%가 이야기를 해야 하고, 상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너무 '75%'로 가서 국민들에게 휘둘리기 시작하면 포퓰리스트 정책이 된다"고 첨언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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