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유선, 시간·유류비 아끼려고 지정항로 이용 안 해
관련 법 규제 없어…"좁은 수로 속도 제한 등 대책 마련"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15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영흥도 낚싯배 추돌 사고는 영흥도와 선재도라는 작은 두 섬 사이 해역에서 발생했다.
인천항에서 평택항 방향의 남쪽으로 쭉 이어진 좁은 수로(협수로)다. '영흥 수도'로 불리는 이 뱃길은 영흥도와 선재도를 잇는 연도교인 영흥대교 아래에서 급격히 좁아진다.
영흥대교의 총 길이는 1.2㎞에 불과하고 배가 다니는 대교 아래 교각 사이의 거리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336t급 급유선 명진15호와 9.77t급 낚싯배 선창1호가 추돌한 지점은 영흥대교에서 남서쪽으로 1마일(1.6㎞) 떨어진 곳이다.
사고 지점을 가운데에 둔 두 섬 사이 거리는 4㎞(2.5마일)가량으로 비교적 길지만 실제로 선박이 운항할 수 있는 뱃길 폭은 370∼500m(0.2∼0.3마일)로 매우 좁다.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해경은 좁은 수로를 두 선박이 비슷한 시각에 통과하던 중 서로의 위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속력을 줄이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해경이 두 선박의 항적을 분석한 결과 사고 당시 명진15호는 북쪽을 기준으로 216도(남서쪽) 방향으로 12노트(시속 22㎞), 선창1호는 198도 방향으로 10노트(시속 18㎞) 속도로 각각 운항 중 이었다.
낚싯배보다 규모가 30배 넘게 큰 급유선이 더 속도를 내던 상황이었다.
급유선이 낚싯배를 발견하고도 미처 속력을 줄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실제로 해경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선창1호를 현장 감식한 결과, 왼쪽 배 뒤편에 '브이'(V) 자 모양으로 심하게 파인 자국이 확인됐다.
반면 30배 넘게 무거운 급유선은 앞부분 선체 하단에서 발견된 페인트칠이 다소 벗겨진 자국 외에 충돌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
생존자들도 "급유선이 낚싯배의 왼쪽 선미를 강하게 충격했다"고 사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해경 관계자는 "추돌 당시 두 선박의 속력 차이가 작지만, 육상의 도로와 달리 해상에서는 충분히 전도될 수 있다"며 "336t인 급유선과 9.77t인 낚싯배 규모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급유선 명진15호의 선장 전모(37)씨는 해경 조사에서 "(충돌 직전) 낚싯배를 봤다"면서도 "(알아서) 피해 갈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낚싯배를 발견하고도 급유선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해경은 전씨가 낚싯배를 발견하고도 충돌을 막기 위한 감속이나 항로변경 등을 하지 않아 주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해경은 전모씨뿐 아니라 2인 1조 당직 근무 중 조타실을 비우고 식당에 간 것으로 알려진 갑판원 김모(46)씨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영흥도 어민들이나 낚싯배 운영자들은 평소 급유선이 인천항을 출발해 영흥도 위쪽으로 돌아 경기도 해역으로 가는 '지정항로'는 놔두고 영흥도와 선재도 사이의 '지름길'을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운항 시간을 30분 넘게 줄일 수 있어 시간과 유류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현행법 위반은 아니다. 지정항로가 아닌 탓에 운항 금지 구역만 아니면 선장 판단에 따라 선박을 몰 수 있다.
영흥도의 한 선주는 "급유선들이 썰물 때를 피해 급히 영흥 수도를 이용하려고 속력을 높인다"며 "낚싯배 몇 척이 겨우 다니는 좁은 수로에 급유선이 다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옹진군의회는 이달 12일 열릴 정례회에서 영흥 수도에서 급유선 등 규모가 큰 선박의 운항을 자제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해 해양수산부 등에 전달할 예정이다.
그러나 인천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6일 "영흥 수도는 해사안전법에 따라 지정된 항로가 아니어서 선장 판단으로 어느 선박이든 다닐 수 있고 사실상 제한 속도도 없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좁은 수로에서 선박의 속도를 규제하는 등의 대책을 찾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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