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전 관장 "회화에 빠져 전공인 도자사는 다 잊었죠"

입력 2017-12-06 20:16  

정양모 전 관장 "회화에 빠져 전공인 도자사는 다 잊었죠"
'조선시대 화가 총람' 출간 기념회…"회화사의 옥동자가 나왔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책 쓰느라 신경을 집중해서 전공인 도자사는 다 잊어버린 것 같아요. 눈이 아물거리고 아는 사람 이름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조선시대 화가 220명의 약력과 작품 세계를 집대성해 '조선시대 화가 총람'을 펴낸 정양모(83)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6일 서울 강남구 호림아트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념회에서 "욕심을 내서 만든 만큼 많은 사람이 읽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전 관장은 "화가의 약력뿐만 아니라 그림과 서명, 화제, 도장까지 전부를 모아 보여주고자 했다"고 강조한 뒤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동료 학자와 후배의 도움 덕분에 책이 나온 것 같다"며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조선시대 화가 총람은 오로지 화가에만 집중해 그들의 가계와 생애를 설명하고 작품을 컬러로 실은 백과사전이다. 분량이 1천484쪽에 달해 두 권으로 발간됐다.
고려 말의 문인화가인 이제현부터 안견, 신사임당, 선조, 허난설헌, 김명국, 윤두서, 정선, 강세황, 김홍도, 정조, 신윤복, 정약용 등을 거쳐 1999년 별세한 이유태까지 빠짐없이 소개했다.
작가마다 적게는 1점, 많게는 16점의 작품 도판을 수록해 책에 실린 회화만 940여 점에 달한다. 또 화가의 서명과 화제, 인장도 5천여 점을 담았다.
국내 화가의 정보를 정리한 사전은 1928년에 간행된 위창 오세창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비롯해 1969년에 나온 '한국회화대관'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11년 선보인 '한국역대서화가사전'이 있지만, 컬러 도판을 게재하고 인장까지 분석한 책은 없었다.
국학자인 위당 정인보(1893∼1950)의 아들인 정 전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시절부터 막연하게 회화사를 종합적으로 고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1999년 국립중앙박물관을 나온 뒤 서울 종로구 서촌에 사무실을 내고 15년 남짓 자료 수집과 집필에 매달렸다. 교정 작업도 그의 몫이었다.
정 전 관장은 출간 소감을 이야기하던 중 마지막 부분에서 작심한 듯, 서명 혹은 인장으로 알려진 '낙관'(落款)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그는 "낙관은 어디까지나 인장이 아닌 서명"이라며 "둘을 혼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00여 명이 모인 출간 기념회에서는 대작의 탄생을 축하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조선시대 회화사를 전공한 안휘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한국 회화사에 옥동자가 하나 태어났다"며 "여든 넘어서 옥동자를 낳는 것이 가능하냐"고 농을 던졌다.
안 명예교수는 "어떤 나라에서 특정 학문의 수준을 알기 위해서는 좋은 개설서나 사전이 있는가를 보면 간단하게 파악된다"며 "그동안 나온 책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보강한 조선시대 화가 총람을 통해 회화사 연구가 대단히 높은 수준에 오르게 됐다"고 강조했다.
권영필 전 고려대 교수는 조선시대 화가 총람을 '대위업'으로 상찬한 뒤 "위당의 영향이 정양모 선생에게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라며 "회화 작품의 본질을 캐내는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정양모 선생님이 조선시대 화가 총람 출간 작업에서 보람을 느낀 덕분에 건강을 유지한 것 같다"며 "한국 회화사 연구에 몇 번 점을 찍어야 하는데, 이제 거의 마지막까지 온 듯하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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