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처 대상국에 어떤 제재 부과할지는 아직 합의 못 해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유럽연합(EU)은 지난 5일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 7개국과 그레이리스트 47개국을 선정해 발표했지만 EU 회원국은 물론 회원국과 관련이 있는 국가나 자치령 지역은 리스트에 포함하지 않아 공정성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년간의 집중적인 논의를 통해 사상 처음 이뤄진 EU의 조세회피처 리스트는 그동안 EU 회원국 포함 여부 등을 놓고 논란이 일어 큰 진전이 없었으나 지난달 초 폭로된 조세회피 자료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사건'을 계기로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EU는 조세회피처 리스트에 오른 국가에 대해서 어떤 불이익을 줄지는 아직 합의를 하지 못해 '미완의 리스트'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U는 향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 나간다는 입장이지만 프랑스와 같은 일부 회원국은 강력한 제재를 원하는 반면에 룩셈부르크와 같은 일부 회원국은 조세회피처 리스트에 오른 것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유럽에 투자한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세금 전쟁을 벌여온 EU에서는 기업들의 세금 회피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기업들의 탈세를 돕는 나라들을 골라내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작년부터 이 논의가 본격 시작됐다.
그동안 EU 회원국 중 일부는 개별적으로 조세회피처 리스트를 작성해 해당국에 나름대로 제재를 가해왔으나 EU 차원의 통일된 리스트는 없었다.
이에 따라 EU는 작년 7월에 워킹그룹을 출범시키고 기업들의 세금 회피를 차단하려는 EU의 노력에 협조적이지 않은 나라를 선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년 11월 EU 경제재무이사회는 ▲세금 투명성 ▲공정한 과세 ▲과세표준축소 및 이윤이전을 막는 조치 여부 등을 기준으로 확정해 조세회피처 리스트 작업에 박차를 가해 작년 말에 일차적으로 92개국을 선정했다.
EU는 이후 92개 예비대상국에 추가 자료를 요구하면서 EU의 세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문제점을 어떻게 보완할지 대책을 제시하도록 하며 대상국가를 압축했다.
그동안 EU의 조세회피처 리스트 작성 과정엔 EU 내에서 각종 세제혜택을 주며 기업을 유치해 경제를 키워가는 국가들을 이 리스트에 포함할지 여부가 주된 논란의 대상이었다.
EU 회원국 가운데서도 네덜란드를 비롯해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몰타 등이 주된 타깃이 됐고, 이 때문에 사상 처음 시작된 EU의 조세회피처 리스트 작업은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초 영국령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에서 유출된 조세회피 자료 '파라다이스 페이퍼스'(Paradise Papers)가 폭로되면서 EU 내부에선 올해 연말까지 조세회피처 리스트를 마쳐야 한다고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EU는 조세회피처 리스트에 EU 회원국은 포함하지 않는 방법으로 가장 큰 논란을 비켜가며 조세회피처 리스트 작업을 마무리했고, 지난 5일 경제재무이사회에서 제3국만을 대상으로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 17개국과 그레이리스트 47개국을 확정했다.
EU의 이번 조세회피처 리스트 선정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더욱이 리스트를 확정하는 과정에 일부 EU 회원국들은 자신들과 관련이 있는 자치령 지역은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하도록 온갖 압력을 행사해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이미 조세회피처로 널리 알려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경우 아예 이번 리스트에서 빠졌고 버뮤다, 케이먼군도 등이 블랙리스트가 아닌 그레이리스트에 포함된 게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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