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싸움하다 뒤통수" 지역 패권다툼에 공동대응도 요원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넋 놓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아랍권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지지만 마땅한 대응책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AP통신은 아랍권 각국이 독기 서린 수사를 써가며 미국의 결정을 규탄하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쏟아냈지만 정작 이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는 아무것도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부닥쳤다고 지적했다.
아랍권 강대국들은 패권 다툼이라는 진흙탕에서 허우적대고 있고 국민은 오랜 내전에 나가떨어졌다. 아랍 정상들이 미국에 대항할 수 있던 시대도 이미 지난 지 오래다.
극렬한 시위와 폭력사태가 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 이외에 현재로서는 아랍세계가 트럼프 맞설 방법이 거의 없어 보인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 3개 종교의 공동 성지인 까닭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쪽이 이 도시를 차지하느냐는 최근 분열 양상을 보여온 아랍권 국가들이 거의 유일하게 한목소리를 내던 의제였다.
이런 이유로 예루살렘의 지위에 관한 미국 정부의 결정이 알려진 직후 아랍권 정상들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수사 이외에 미국을 겨냥한 구체적인 외교적 대응에 관한 계획은 나온 게 없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맹주 이란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 재러드 쿠슈너 미 백악관 선임고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모하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로서는 미국에 등을 돌리기 어렵다.
사우디가 최소한 표면적으로라도 트럼프 행정부나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더라도 대이란 첩보활동에서는 양국과 긴밀히 협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긴장관계를 이어온 이란은 이번 사태를 무슬림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할 절호의 기회로 삼을 전망이다.
아랍 각국은 지난 1973년에는 중동전쟁 이후 미국의 이스라엘군 지원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에 대한 석유수출을 중단하면서 1차 석유파동을 일으켜 경제적 손실을 입히며 단합된 힘을 보여줬었다.
그러나 오늘의 사우디, 요르단, 이집트는 미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정작 다른 아랍권 국가들과는 정치·종교적 이유로 갈등을 빚고 있다.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예멘 등에서는 수년간 이어진 내전에 허덕이고 있어 국외 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 수니파 국가들과 이스라엘은 시아파 이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최근 관계도 개선되는 분위기다.
이런 이유로 아랍권 국가들이 미국 정부의 이번 결정에 맞서 단합된 힘을 보여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그러나 아랍권 국가들에도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남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집트 전 부통령이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지낸 노벨평화상 수상자 모하메드 엘바라데이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아랍권 자금의 미국 유입을 과감히 제한하고 미국과의 외교·군사·정보공유 관계를 최소화하는 2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그는 "만약 (아랍권의) 대응이 규탄과 비난에 그친다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더 명예로운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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