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산업은 금융논리 외에 산업적 측면 고려해 충격 완화
민간위원회 설치해 구조조정 관리…관계장관회의가 컨트롤타워
고의·중과실 없으면 면책…'소신' 구조조정 유도·변양호 신드롬 차단
(세종=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새 정부 출범 7개월 만에 나온 기업 구조조정 추진 방향은 국책 금융기관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시장중심으로 전환해 공적 부담이 발생하는 것을 가급적 줄인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와 함께 기존에는 부실 발생 후 대처하는 사후 처리에 치중했으나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산업을 진단해 부실을 예방하는 사전 대응에 주력할 계획이어서 효과가 주목된다.
정부는 구조조정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금융논리 외에 산업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할 방침이다.
이는 그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기된 비판과 지적을 고려한 것으로, 구조조정을 단순히 부실을 정리하는 수술 차원이 아니라 산업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 부실 발생 전에 위험 요인 진단·관리한다
주요 산업을 정기적으로 진단·분석해 부실을 예방하고 선제적으로 산업 재편을 유도하는 등 이른바 '사전 구조조정' 체계를 확립한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중병이 발생하면 위험을 감수하고 대수술을 하는 것이 기존의 방식이었다면 사전 구조조정은 평소에 건강을 관리해 질병을 예방하고 병이 커지기 전에 치료해 환자와 가족이 겪는 충격을 줄이는 구상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획재정부, 산업 관련 부처, 금융위원회, 연구기관 등이 주요 산업의 국제 업황, 국내경쟁력 수준, 리스크 요인을 정기적으로 분석한다.
주요 기업의 경우 금융감독원의 협조를 받아 재무상황, 경영여건, 리스크 요인까지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정밀 진단을 실시해 선제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마련한다. 필요하면 외부 컨설팅도 한다.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내용을 논의하고 진행 상황을 점검한다.
정부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에 따라 기업이 부실 발생 전에 미리 사업재편을 하도록 승인하고 사전 구조조정을 독려할 계획이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기업활력법에 따라 사업재편 등을 승인받은 기업은 조선업계 25개사, 철강업계 7개사 등 모두 57개사이며, 사전 구조조정 체계가 확립되면 이런 기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부실 확인되면 시장중심 구조조정…공적 부담 줄인다
부실이 감지된 기업은 시장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하게 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국책은행이 자금을 대량 투입해 구조조정을 하고 이것이 공적 부담으로 이어진 전례를 고려한 조치다.
통상적인 기업 구조조정은 신용위험 평가를 통한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을 활용해 채권단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한다.
평가 결과 부실징후기업(C·D등급)으로 판정되면 워크아웃·자본시장·법원 절차 등 세 가지 트랙에 따라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기존에는 주로 채권단이 주도하는 자율협약과 워크아웃 등이 구조조정의 주축을 이뤘으나 자본시장과 회생법원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 공공 부문과 민간이 협력해 내년 상반기까지 1조원 규모의 구조조정 펀드를 조성해 구조조정 기업을 매수하는 등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필요하면 자본을 확충해 펀드 규모를 키운다.
정부는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일이 없도록 신용평가를 엄격하게 하고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매수·매도를 지원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관련 정보가 시장에 공개되도록 할 계획이다.
사모펀드(PEF)를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업이 매각 후에도 당좌대출·할인어음·무역금융 등 한도성 여신을 문제없이 확보하도록 지원 프로그램도 만든다.
회생법원은 회생 가능한 기업에 대해 채무조정 외에도 신규자금 지원이 가능한 P플랜을 활성화할 전망이다. P플랜은 기업을 단기적으로 법정관리에 보내 법원이 강제로 채무 재조정을 한 뒤 워크아웃 절차로 되돌려 놓고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새로운 법적 구조조정 방식이다. 대우조선 구조조정 당시 검토됐으니 실제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정부는 채권단이 마련한 사전 회생 계획안을 법원이 신속히 인가할 수 있도록 법원·금융당국·채권단 사이의 협의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 산업·금융 논리 균형으로 국민 경제 충격 최소화
고용 규모가 큰 기업이나 핵심 산업 분야의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경우 국민 경제에 작지 않은 충격이 올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업을 구조조정하거나 산업 전반이 구조적인 부진에 직면한 경우나 국가 전략산업 기업을 구조조정할 때에는 관계 기관이 협의해 산업적 측면과 금융논리를 균형 있게 반영한 처리 방안을 마련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관계 기관이 실사 결과를 공유하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며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해 고용이나 지역경제에 미칠 충격을 흡수할 보완책도 마련한다.
국책은행이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경우 대국민 브리핑 등으로 소통을 강화하며 정부는 구조조정 기업이 자구 노력 이행을 철저히 하도록 관리한다.
국책은행이 출자한 기업은 민간 전문가가 중심이 된 별도의 출자회사 관리위원회를 마련해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산업은행은 기존의 관리위원회를 사외이사와 민간 전문가로만 구성된 관리위원회로 개편할 계획이며 수출입은행은 관리위원회를 신설한다.
출자기업 관리는 기본적으로 출자한 국책은행이 담당하되 철저한 관리책임 부여하고 신속한 매각을 유도한다.
특히 출자기업 관리과정에서 심각한 손실이나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하도록 해 적극적인 대응을 권장할 방침이다.
이런 원칙은 구조조정 업무와 관련한 부처·기관·국책은행 등의 업무에 관해 적용된다.
나중에 문책당할 것을 우려해 공직자 등이 논란이 될만한 사안에 관한 결정을 회피하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을 주도했다가 특혜성 헐값 매각을 했다는 논란 속에 구속 수사를 받았다.
그는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기소됐고 수년에 걸친 재판 끝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변 전 국장은 재판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변양호 신드롬까지 생겼다며 소신대로 일한 공직자에게 무리하게 책임을 묻는 풍토를 비판했다.
정부는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가 구조조정의 최종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산하의 3개 분과 체제를 기획재정부 1차관이 주재하는 1개의 실무협의체로 개편해 주요산업을 점검하고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하는 등 실무를 담당하게 한다.
산업·금융 관련 부처가 꾸리는 태스크포스(TF)의 논의 결과가 의사 결정의 기초 자료가 된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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