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온전한 의미의 독일 양대 전국정당이자 최대 정파인 중도우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내주 대연정 협상을 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기사연합과 마르틴 슐츠 당수가 간판인 사민당은 7일 사민당 전당대회 결정에 따라 다음 주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슈피겔 온라인 등 현지 언론이 8일 보도했다.
사민당은 전날 전대에서 슐츠 당수를 재신임하고 기민기사연합과 '결과가 열려 있는' 협상을 하겠다고 확정했다.
결과가 열려 있다는 뜻은 타협에 성공하면 대연정을 다시 구성하지만, 실패하면 소수정부나 재선거 등 다른 경로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메르켈 3기 집권기인 지금 양 정파는 대연정을 가동 중이다.
이를 위해 사민당은 이번 실무 협상 중간결과에 관해 오는 15일 연방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평가한 뒤 본격적 타협을 위한 정책안을 다듬을 방침이다. 이에 앞서 기민당도 10∼11일 연방 최고위를 열어 실무 협상에 대비할 계획이다.
문제는 역시 양 정파의 정책 간극을 좁히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민당은 연금 소득대체율 하한 50% 보장, 의료보험 일원화, 서민ㆍ중산층 조세 부담 완화 및 초고소득자 부담 추가, 교육ㆍ주택 분야 투자 확대 같은 정책 의제를 협상 전제조건인 양 지난달 제시한 데 이어, 이번 전대에서 오는 2025년까지 유럽연방(유럽합중국) 건설과 연간 난민 20만 명 상한제 반대 같은 정책 구상을 내놓았다.
이에 맞서 기민기사연합은 무차입 재정과 균형예산 유지, 통일연대세 점진 폐지, 연간 난민 20만 명 상한제 등을 반드시 관철해야 할 정책 패키지로 밝혔다.
두 정파가 전제조건이나 필수 관철 대상인 것처럼 이들 사안을 언급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만한 순진한 정치인은 없다. 협상 테이블에선 반드시 절충과 양보가 뒤따라 정책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뒤섞이고 혼합되고 융합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슐츠가 전대에서 처음 선보인 유럽연방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 구상은 유럽헌법을 만들어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주권을 사실상 포괄적으로 유럽연방정부에 위임하되 동의하지 않는 회원국은 원천 배제한다는 합중국 건설 아이디어다. 유럽의회 의장을 지낸 슐츠가 강점을 지닌 의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당장 기사기사연합에선 급진적이고 과격하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나왔다.
슐츠 당수가 그런 반응이 나오리라 짐작하지 못했을 리 없지만, 그런데도 이 구상을 들고나온 건 유럽의 원심력 확대를 막고 통합을 심화하겠다는 사민당의 결기를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즉, 유럽통합 심화를 추구하는 최대주의적 관점을 밝혀 협상에서 이 분야의 자당 의제를 더 많이 관철해 내겠다는 의지를 갖추고 기 싸움에 들어간 거라는 해석이다. 작은 요구(최소주의)보다는 큰 요구(최대주의)를 해야 협상 과정에서 그나마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뿐 아니라 양 정파가 부닥치는 적지 않은 의제는 차이가 커서 애초 타협이 어려울 수 있지만, 타협해 보겠다는 자세가 현저하다면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절충할 여지도 많다.
예를 들어 기사당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기민당과 메르켈은 내내 반대하다 타협한 난민 제한, 통일연대세 점진 폐지나 조세 문제도 정책 속도 조절과 접근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절충될 수 있고 여타 분야에선 주고받기식 타협이 가능하다.
하지만 언제나 정치적 부담은 당 내부에 있다.
특히, 사민당은 청년당원그룹('Jusos')의 대연정 결사반대 흐름을 누그러뜨리고 당의 미래인 이들을 끌어안는 것이 숙명의 과제다. 그러려면 이들을 만족하게 할만한 협상 결과가 나와야 한다.
사민당은 협상이 타결된다면 내년 1월 특별전대를 열어 이에 관해 최종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사민당은 현재, 기민기사연합보다 당세가 약하고 재선거 시 지지율 제고에 관한 확신도 적을 뿐 아니라 당 내부 분열도 심하다.
이 정당이 특별전대에서 대연정 협상 결과를 걷어찬다면 소수정부나 재선거 가능성으로 초점이 옮겨지는데, 소수정부는 불안정할 뿐 아니라 때론 기성 정당들이 불온 시 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닥칠 수 있기에 특히 기민기사연합의 거부감이 크다.
따라서 소수정부는 재선거를 유예하는 미봉책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으며, 그래서 거론되는 총리선출과 의회해산에 이은 재선거 경로는 모두가 불안해하는 미지의 길이라는 부담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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