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메이, 브렉시트 강경·온건파 설득에 결국 성공

입력 2017-12-08 19:59  

英 메이, 브렉시트 강경·온건파 설득에 결국 성공
추락한 리더십 불구 내부 다독이고 1단계 협상 타결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하드 브렉시트'와 '소프트 브렉시트'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힘겹게 유럽연합(EU)과 이혼 조건에 관한 협상을 타결짓는 데 성공했다.
영국 일부 언론들은 그간 메이 내각에서 협상안을 둘러싸고 이견과 진통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메이의 중도 낙마 가능성을 짚곤 했다. 메이에게 이번 협상은 총리직이 달린 시험대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협상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EU 측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막판 협상이 깨지면 메이가 실각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했다고 보수 일간 텔레그래프는 소식통을 인용해 전한 바 있다.
융커가 메이에게 거듭 협상 시한을 미뤄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탈퇴조건에 관한 1단계 협상이 시작된 지난 6월 이래 한동안 메이는 EU와 완전한 청산을 요구하는 '하드 브렉시트' 세력과 최대한 현 수준과 가까운 관계를 요구하는 '소프트 브렉시트' 세력 사이에 끼여 옴쭉달쭉 못했다. EU 측은 완고하게 버티면서 협상은 몇 개월째 교착상태를 지속했다.
메이 스스로 초래한 여건이었다.
강한 협상력을 달라면서 조기총선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오히려 결과는 이전보다 의석을 잃고 과반의석을 내주는 '참패'에 직면했다. 집권 보수당 내 리더십은 추락했다. 메이 낙마를 겨냥한 당내 반란세력의 물밑 행보가 끊임없이 일부 언론들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러는 동안 영국이 아무런 합의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 시나리오가 급부상하면서 재계는 불안과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런 가운데 메이는 2년간의 '이행 기간' 카드로 돌파구를 찾았다.
2019년 3월 EU를 공식 탈퇴한 뒤에도 2년간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지위를 얻자는 제안이다. 대신 이 기간 EU 분담금을 내고 EU 법규도 따르자는 제안이다.
이에 "규제 절벽"을 우려한 재계와 브렉시트 온건파가 환영했다. 강경파인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이 사퇴할 준비가 돼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메이 내각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추측이 번졌지만 존슨의 '반란'은 현실화하지 않았다.
'이행 기간' 합의를 끌어낸 데 고무된 메이는 뜨거운 감자인 이혼합의금 쟁점에서 통큰 양보를 했다. 협상 타결을 위해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여론의 반발을 감수키로 한 것이다. 실용적 접근을 선호한다는 평가에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북아일랜드 국경과 영국 내 EU 시민의 거주 권리에 관한 재판에서 EU 최고사법기구인 유럽사법재판소(ECJ) 관할권 등 다른 쟁점에서도 메이의 실용적 접근은 이어졌다.
소프트 브렉시트를 추구하는 제1야당 노동당의 예비내각 브렉시트담당인 키어 스타머 의원은 협상 타결을 반기는 듯한 반응을 내놨다.
스타머 의원은 "EU 집행위가 1단계 협상에서 충분한 진전을 거뒀다고 EU 정상들에게 권고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환영했다.
다만 그는 "타결된 협상의 정치적 희생과 양보가 앞으로 EU와 미래관계에 미칠 영향을 알아야 한다"면서 "테리사 메이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협상 접근을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또 다른 혼돈과 혼란을 지켜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보수당내 브렉시트 강경파에서도 메이의 협상 타결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존슨 장관과 더불어 대표적인 하드 브렉시트 지지자인 마이클 고브 환경부 장관은 이번 합의는 메이 총리의 "상당한 개인적, 정치적 성취"라고 추켜세웠다.
역시 브렉시트 지지자인 안드레아 레드섬 장관도 축하 입장을 내놨다. 다만 존슨 장관은 아직 관련한 발언을 내놓고 있지 않다.
스코틀랜드의 EU 단일시장 잔류를 추구하는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2단계 협상으로 나아가는 점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악마는 세부사항들에 있고 이제 협상이 진짜 빡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로서는 1단계 협상 합의를 끌어내는데 성공해 훼손된 리더십을 다소 추스르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측 모두에 이익이 되는 영-EU 통상협정 협상 역시 1단계만큼이나 힘든 협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통상협정 협상은 직접적인 손실을 보게 될 이해집단들이 출현한다는 점에서 1단계 협상보다 실질적인 협상이라 할 수 있다.
메이 앞에 놓인 걸림돌들이 아직 산적해 있다는 뜻이다.
jungw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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