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예루살렘 올드시티서 이스라엘 경찰-팔레스타인 충돌
헬기 순찰·삼엄한 경찰 통제 속 외신 기자도 100여명 몰려
(예루살렘=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포한 뒤 '분쟁의 성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예루살렘에는 8일(현지시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날 오후 1시(현지시간)께 예루살렘의 상징부인 동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 관문으로 통하는 '다마스쿠스 게이트'. 이곳 하늘 위에서는 이스라엘 경찰 헬기 1대가 비행 소음을 끊임없이 내고 있었다.
다마스쿠스 게이트 정문에서는 검은색 복장의 이스라엘 무장 경찰 20여명이 올드시티 출입을 전면적으로 통제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날은 올드시티 내 알아크사 모스크(이슬람사원)에서 금요 합동 예배를 마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시위 가능성 때문에 어느 때 보다 충돌 위기가 큰 날이었다.
실제 정문 오른쪽 계단에서는 팔레스타인 100여명이 모여 '아라비야, 아라비야, 알쿠드스 아라비야'(아랍, 아랍, 예루살렘은 아랍의 것)를 연방 외쳐댔다.
경찰은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사방에서 에워싼 채 예의주시하다 일부 시위대가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돌출 행동을 하면 즉각 달려가 연행을 했다.
이 연행에 다른 팔레스타인이 항의하면 또다시 체포가 이어지는 긴박한 순간이 1시간 넘게 계속됐다.
시위대 중 누군가 경찰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돌과 물병을 직접 던지는 장면도 목격됐다. 그러면 경찰은 무리를 지어 그 행위자를 찾아 나서면서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바뀌기도 했다.
다마스쿠스 게이트 앞 도로는 기마경찰 10여명과 바리케이드에 수시로 통제됐다. 골목 모서리 주변에서도 무장 또는 사복 경찰이 무전기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나가는 차량도 거의 없었고 거리 상점 일부는 문을 닫았다.
이곳은 평소 외국인 관광객과 현지 상인, 아랍계 주민이 한데 뒤섞여 발 디딜 틈 없이 분주한 관광 명소지만 이날은 군인들과 시위대, 취재진 등1천여 명이 뒤엉킨 채 크고 작은 충돌을 반복했다. 현장에 와 있는 외신 기자만 해도 100여명에 달했다.
다마스쿠스 게이트 앞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주민 파레스 리시크(45)는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에 항의하기 위해 오늘 이곳에 왔다"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만의 수도가 아닌 우리의 수도"라고 힘주어 말했다.
두 아들 오마르(9)와 무스트파(6)와 함께 나온 리시크는 이어 "트럼프의 발표는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며 "어느 나라도 예루살렘이 어느 나라에 속한다고 결정하거나 말할 권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 팔레스타인 주민은 기자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고는 흔쾌히 인사를 나누면서도 '예루살렘의 지위' '트럼프 발언에 대한 생각'을 묻는 말에 "인터뷰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이들은 경찰과 팔레스타인 주민이 뒤섞여 있는 혼잡한 상황에서 괜한 오해로 체포될 가능성을 우려한 듯 보였다.
이곳에서 만나 하고브(27)는 "사복 경찰과 정보요원이 곳곳에 배치돼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도 한다"며 "시위를 주동하면 나중에 붙잡혀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예루살렘보다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 지역은 상황이 더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예루살렘에 도착했다는 터키 기자 투란은 "서안의 라말라와 베들레헴 등지는 여기보다 충돌 양상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올드시티에 산다는 지한 압바시(37.여)는 "몇 달 전에도 이곳에선 이스라엘의 금속탐지기 설치로 큰 충돌이 있었다"며 "트럼프 발언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고 했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올드시티를 포함한 동예루살렘은 과거 아랍국가의 지배 아래에 있다가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이후 지금까지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대한 주권을 확립하고자 정착촌을 계속해서 확장했고,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장차 설립될 독립국의 수도로 내 달라고 요구하며 이곳의 연고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동예루살렘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한, 향후 충돌의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러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발언으로 동예루살렘의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졌다고 현지 주민들은 전했다.
앞서 팔레스타인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후 6일~8일 사흘을 '분노의 날'로 선포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전날부터 제3차 인티파다(민중봉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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