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강제북송 불똥튈라 우려…북한인권에서도 '미일-중러' 신냉전 라인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1일(현지시간) 북한 인권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해 논의한 가운데 중국이 회의를 저지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 미묘한 북중관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2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은 유엔안보리 북한 인권회의 개최를 절차투표 단계에서 저지하려 했으나 9개국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지 못해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
안보리는 절차 투표를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정식안건으로 채택했는데 15개 이사국 가운데 10개국이 찬성하고 이집트와 에티오피아가 기권하면서 중국, 러시아, 볼리비아 3개국만 반대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예상대로 탈북자 강제북송, 정치범 수용소, 해외 파견 노동자 등 북한의 전반적인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중국이 회의를 저지하면서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경우 역내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하이타오(吳海濤) 유엔주재 중국 차석대사는 회의에서 "이사회 회원국과 관계국들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할 방법을 찾는 데 전념해야 한다"며 "상호 도발을 피하고 상황을 악화시킬만한 언사나 행위를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보리의 "(북한) 인권에 관한 논의가 앞서 언급한 목표에 역행하고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의 저지 시도에는 중국이 탈북자 강제북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인권침해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이 부각되는 데 대한 부담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이날 안보리 회의에 이어 부대 행사로 열린 탈북자 강제북송 주제 북한 인권 토론회에서는 중국 정부를 불편하게 할만한 증언들이 이어졌다.
토론회에는 1999년께 처음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3차례의 강제북송과 4차례의 탈북을 감행해 2007년 한국에 정착한 지현아 씨도 참석해 탈북 과정에서 겪은 인권 유린 경험을 상세히 전했다.
지 씨는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에 대해 "탈북자 강제북송은 살인 행위"라면서 중국이 강제북송을 멈추길 호소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함께한 북한인권 전문가 데이비드 호크는 "(중국 내 탈북자들이) 경찰에 신고되거나 중국 당국에 검거되면 그들은 중국 측 송환통로로 이송된다"며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YNAPHOTO path='PYH2017121207660034000_P2.jpg' id='PYH20171212076600340' title='안보리, 4년 연속 北인권유린 성토' caption='(뉴욕 EPA=연합뉴스)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고 있다. 안보리는 11일 북한의 인권상황을 정식 안건으로 올려 규탄하고 북한 당국에 개선을 촉구했다. 안보리가 북한 인권상황을 정식 안건으로 채택해 논의한 것은 2014년부터 4년 연속이다. <br>ymarshal@yna.co.kr'/>
중국은 1986년 북한과 체결한 협약에 따라 중국으로 건너온 탈북민이 적발될 경우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고 있다.
이날 회의를 비롯해 중국이 그동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에 매번 어깃장으로 일관한 배경에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되는 양국관계의 특수성도 자리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다른 중국 지도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민지원군을 파병하겠다며 순망치한론으로 양국관계를 설명했다.
중국은 탈북자 발생을 북한 정권의 위기를 넘어 자국 안보문제로 보고 있는 성향이 뚜렷하다.
특히 북한의 핵탄두, 미사일 시험이 계속 강행돼 한반도 위기가 가중된 올해 탈북자 단속을 훨씬 강화됐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중국 내 탈북자 지원단체인 'HHK' 팀 피터스 대표는 SCMP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핵 위기가 고조돼 북한 정권이 전복될 경우, 대규모 탈북민이 중국으로 넘어올 것을 우려해 탈북자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방 언론들은 북한 정권이 사라지고 미군이 주둔하는 친미 성향의 통일 한국과 국경을 맞댈 상황을 중국이 경계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북한과 모종의 공동운명체 관계를 구축한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미사일·핵실험 도발에 따른 제재 움직임뿐만 아니라 인권과 같은 보편가치에 대해서도 특정 수위의 방어막을 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유엔 안보리 북한인권 회의에서도 핵 프로그램을 제재하기 위한 회의에서 나타난 것처럼 미일과 중러가 대치하는 '동북아 신냉전' 라인이 재연됐다.
북한과 더불어 역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를 받는 국가인 러시아도 그동안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를 반대하거나 그 수위를 낮춰 실효성을 약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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