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 국민 갈등 치유에 도움되기를

입력 2017-12-12 18:27  

[연합시론]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 국민 갈등 치유에 도움되기를

(서울=연합뉴스) 정부는 12일 국무회의를 열어 제주도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소송을 철회하는 내용의 법원 '강제조정안'을 수용했다. 해군이 작년 3월 제주도 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공사 지연으로 손실을 봤다며 강정마을 주민·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34억5천만 원의 구상권 청구소송을 철회하기로 한 것이다. 1년 9개월 만이다.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원고와 피고들은 상호 간 일체의 민·형사상 청구를 제기하지 아니한다. 상호 간에 화합과 상생,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강제조정안을 정부로 보냈다. 이에 이낙연 국무총리는 "갈등 치유와 국민 통합을 위한 대승적 차원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구상권 청구소송을 계기로 강정마을 주민 등과 해군 간의 반목과 갈등은 악순환을 거듭했다. 이를 풀고자 국회의원 165명이 '구상금 청구소송 철회 결의안'을 내고, 제주도지사와 지역사회 87개 단체가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건의문'을 제출하는 등 소송 철회를 촉구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렇게라도 일단락된 것은 다행이다.

정부의 결정에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온 강정마을회는 물론, 제주도 정치권은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10여 년간 이어진 강정마을 공동체의 반목과 갈등을 해소할 실마리를 마련하게 됐다는 판단에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삶의 터전을 내어준 주민들은 범죄자로 내몰렸고 거액의 구상금 청구까지 겹치면서 강정마을은 산산이 깨졌다"면서 "정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바로잡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했다. 제주도 정가에서는 자유한국당 제주도당을 포함해 여야를 막론하고 한목소리로 환영했다. 중앙 차원에서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갈등 치유와 국민 통합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한 것으로 환영한다"고 했고, 국민의당도 "뒤늦은 것이지만 당연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강정마을회 등이 요구해온 처벌 대상 주민에 대한 특별사면이나 해군기지 사업 관련 진상조사 요구 등을 놓고 갈등이 재연될 우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게 만들어진 기회를 없애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문제점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법원에 이어, 정부가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선례를 남기고 국가를 지탱하는 법치주의를 훼손했다는 게 그 핵심이다. 불법 행위로 국가와 군의 핵심시설 공사가 지연된 데 따른 금전적 손실에 대한 면죄부를 줌으로써 유사한 행위를 조장했다는 지적이다. 자유한국당은 "정부의 구상권 포기는 지역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법 전문시위꾼들에게 면죄부를 줘 불법시위를 계속하도록 용인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불법적 방해 행위로 공사가 2011년 1월부터 14개월여 지연돼 발생한 추가 손실 비용 275억 원을 국방예산 중 방위력개선비에서 충당한 것이 적법했는지도 논란거리다. 방위력개선비는 무기획득과 무기 운용유지, 군사력 건설 등에 쓰도록 되어 있어서다. 국방부 관계자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예산이 방위력개선비에 편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이전 정부에서 구상권 소송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국방부와 해군이 돌연 입장을 바꾼 대목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법원과 정부의 결정을 '불법시위에 면죄부를 주고 법치주의를 훼손했다'고 비난만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갈등의 시작은 강정마을이 예정지로 발표된 2007년 5월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정부는 화순항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했지만, 제주도와 지역주민 등의 반대에 부딪혀 2002년 말 계획을 유보했다. 그 후 4년 넘게 지나 부지가 강정마을로 바뀌면서 번진 갈등이 오늘에 이른 셈이다. 연안해역 수호와 남방해역 해상 교통로 등을 보호하는 대양해군의 전략요충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정부의 국가안보 논리와 세계자연유산인 제주도를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평화의 섬'으로 지켜야 한다는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의 논리가 맞부딪혔다. 지역주민의 생존권과 재산권 침해 주장도 있었다. 기지 부지 선정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여부, 불법시위와 공무집행 방해 및 공권력 남용 논란, 국책 사업과 헌법상 의사 표현의 자유 등은 모두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 의제들이다. 어느 한쪽의 논리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법원과 정부의 구상권 철회 결정에 차가운 법리를 적용하면 문제점이 발견되지만, "갈등 해결을 위한 대승적 결정"이라는 정부의 고뇌도 이해할 만하다. 정부 결정이 이 문제를 둘러싼 국민 갈등을 대승적으로 치유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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