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중소기업계가 국회에서 근로시간 단축 법안을 논의할 때 영세 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충실히 고려해 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관련 단체장들은 12일 '호소문'을 내고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한해 노사합의 아래 주당 최대 8시간의 특별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휴일근로수당의 할증률도 현행 50%로 유지하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국회와 정부에 요청했다. 이들 단체장은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야 간사 간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가 무산된 근로시간 단축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면서 특히 "구조적 인력난을 겪는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인력난으로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과도한 할증률은 중소기업에 큰 부담이 된다"며 "중복 할증(휴일근로 할증+연장근로 할증)이 중소기업에 적용되면 연 8조6천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지금도 생존에 허덕이는 영세기업들은 내년에 시행되는 최저임금 16.4% 인상도 감당하기 벅차다"면서 "지금이라도 국회가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한 대기업 노조의 이해보다 근로자의 90%가 종사하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봐 달라"고 했다.
중기 업계의 이런 요청은 현실적인 절박함에서 나온 것 같다. 실제로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단축되면 불법 연장근로가 불가피해 사업주가 법을 어기거나 폐업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기 업계의 30인 미만 사업장에는 현재 493만 명이 종사하고 있지만 회사가 아무리 구인 노력을 기울여도 여전히 16만여 명이 부족할 만큼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여기에다 근로시간까지 줄어들면 인력난이 더 심해져 제품 납기를 맞추기도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국회 환노위는 지난 정기국회에서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결국 처리하지 못한 채 회기를 넘겼다. 환노위의 여야 3당 간사는 단축된 근로시간 적용 시점을 종업원 수에 따라 3단계로 나누고, 휴일근로수당 할증률은 현행대로 통상임금의 50%(8시간 초과분에 대해서는 100%)로 한다는 것에 잠정 합의했으나,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일부 의원이 휴일근로수당 할증률을 100%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 합의에 실패했다. 이들은 최근의 법원 판결 추세에 따라 휴일 근무를 할 경우 휴일근로 할증에다 연장근로 할증을 추가해 통상임금의 2배를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세계 최장 수준인 국내 근로시간을 줄여 근로자 삶을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대통령은 1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은 18대 국회부터 논의해 왔던 사안으로 더 늦출 수 없는 과제"라면서 "국회가 이른 시일 내에 매듭지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이 겹치면서 특히 영세 기업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안겨주는 게 현실인 듯하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국회와 정부 고위관계자를 만나 업계의 이런 어려움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당·정·청은 12일 긴급 조찬회동을 열어 연내 법안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 이것만 봐도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겨냥한 법 개정 움직임이 빨라지는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정부와 여당이 법안 처리를 서두르다가 업계의 간절한 호소를 가볍게 넘기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해당 기업에는 존폐가 걸린 문제인 만큼 진지한 태도로 실제로 고충이 있는지 성심껏 살펴봐야 할 것이다. 매사 무리하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밀어붙이기식으로 일을 처리했다가 근로시간 단축의 본래 취지가 크게 퇴색하는 결과를 자초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