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서 주범 징역 20년, 공범 무기징역…항소심 진행중
주범 형량 두고 한때 소년법 개정 논란 일었다 '잠잠'
[※ 편집자 주 = 2017년이 저물어 갑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쉬움만큼이나 사회 곳곳에서 상처도 적지 않았습니다. 1년 전 기대와는 달리 전 국민의 탄식과 경악, 분노와 슬픔을 자아냈던 사건이 많았습니다. 연합뉴스는 "2018년은 달라졌으면…"하는 바람을 담아 올해 한국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여섯 사건을 정했습니다. 이들을 되짚어 교훈과 성찰의 계기로 삼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은 피해 학생과 가족의 뜻을 존중해 다루지 않았습니다.]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악연의 시작은 인터넷 '캐릭터 커뮤니티'에서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다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자퇴한 A(17)양은 이 가상 공간에서 재수생 B(19)양을 처음 만났다. 올해 2월이다. 이곳에서 B양은 인육을 먹는 부두목 캐릭터였고, A양은 그의 조직원이었다.
부두목과 조직원은 관심사가 비슷했다. A양은 살인·시체해부·인육을 주제로 한 영화나 소설에, B양은 손가락과 폐와 같은 인체 조직에 심취했다.
10대 후반 여학생들의 취향이라고 보기에는 흉측했지만, 못할 게 없는 가상 공간이었다.
둘은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독특하지만 비슷한 취향을 공유했고, 공유하는 게 늘수록 더 가까워졌다.
"B양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꽤 친했고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달 정도 뒤 "예쁜 손가락을 갖고 싶다"는 B양의 말에 A양은 실제로 사람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B양은 평소 A양의 성격에서 폭력성과 잔혹성이 엿보였다며 실제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부추겼다.
이들은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소설쓰듯 창작한 살인극을 실제 세계로 꺼내왔다.
A양은 올해 3월29일 점심 무렵 자신이 살던 인천시 연수구의 한 아파트를 나섰다. 어머니의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꼈다. 손에는 여행용 가방도 들었다. 누가 봐도 여고생같지 않았다.
아파트 인근의 초등학교 앞 공원을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찾았다. A양은 이를 '사냥'이라고 했다.
친구와 함께 있던 C(8·사망)양이 눈에 띄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휴대전화 좀 빌려줄 수 있느냐"며 아이가 먼저 다가왔다.
A양은 계획했던 것보다 쉽게 일이 풀린다고 생각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없다며 집 전화를 쓰게 해주겠다고 속였다.
머리에 분홍색 핀을 꽂고 A양의 집에 따라 들어간 C양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잔인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실종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A양이 사는 아파트 옥상에서 20ℓ 크기의 쓰레기봉투 2개에 담긴 C양의 시신 일부를 찾아냈다.
"우리 며늘아기가 울면서 말을 (제대로) 하질 못해요. 며느리가 '우리 딸이 빨리 천사가 되려고 하늘나라 간 거'라고 하는데 흑흑…"
막내 손녀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타들어 간 할머니의 속은 손녀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까맣다 못해 잿더미가 됐다. "학교에서 100점 맞아오면 용돈달라"며 애교를 부리던 한없이 예쁜 손녀였다.
피해자를 살해한 뒤 시신까지 유기한 A양은 당일 오후 늦게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B양을 만났다.
"부탁했던 손가락과 폐가 들어있어. 그 아이 손가락 예쁘더라"
둘은 피해자의 시신 일부가 담긴 봉투를 들고 다니며 술집에서 술도 마셨다.
현실 속 살인극은 끝났고 이들은 경찰에 붙잡혔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후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 10대 소녀인 A양에게 붙은 죄명이다.
애초 살인방조 등의 혐의로만 기소된 B양에게도 살인죄가 적용됐다. 경찰 수사 초기 B양을 보호해주던 A양이 '사람을 죽이라'는 지시를 그가 했다고 실토했기 때문이다.
"B에게 피해가 덜 가는 방향으로 해 주고 싶었지만, 그의 진술은 저에게만 다 미루고 있는 꼴입니다. 지금은 B도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C양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끔찍하게 살해한 A양의 얼굴을 사건 발생 4개월만인 올해 7월 법정에서 처음 봤다.
딸을 잃은 어머니는 울지 않았고,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살인자는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그 당시 어떤 아이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가해자가 자신의 죄에 맞는 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재판부는 A양에게 징역 20년을, 공범 재수생 B양에게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했다. "심신미약 상태였고 자수했으며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라는 A양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 범행 현장에 없었고 직접 살인을 하지 않은 B양이 주범인 A양보다 높은 형을 받자 소년법 논란이 일었다.
소년법을 개정해 달라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자 40만만명 가까이 동의했다.
이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청소년이라도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고 그 청소년들을 엄벌하라는 국민의 요청은 정당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면서도 "사건별로 당사자별로 사안이 다르기 때문에 '형사 미성년자 나이를 낮추면 해결된다'는 생각은 착오"라고 답했다.
현행 소년법은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가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형량을 완화해 징역 15년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도 미성년자가 살인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최장 20년으로 형량을 제한하는 특례조항이 있다.
이 때문에 A양은 무기징역을 피해 징역 20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올해 9월 형법상 '형사 미성년자'의 최저 연령을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는 내용을 포함해 미성년자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위한 3가지 관련법 개정안을 냈다.
같은 당 표창원 의원,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 등도 잇달아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해 둔 상태다.
그러나 소년법 개정 논의는 이 사건이 점차 잊히며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피해자 유족측 법률대리인인 김지미 변호사는 소년법 개정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신중하게 논의돼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김 변호사는 15일 "이 사건은 일반적인 청소년 범죄와는 다른 전무후무한 미성년자 범죄"라며 "피고인 중 A양은 형량을 모두 채우고 출소해도 30대 후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 부모님들도 가해자들에게 극형을 내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성장했는지 안타까워한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A양과 같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도 무기징역 이상의 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하면 해당 청소년의 재범은 막을 수 있지만, 비슷한 사건 자체를 없애진 못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과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대책 부재가 이들의 끔찍한 범죄를 부추겼다고 봤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학교를 자퇴한 주범 A양이 SNS에서 소속감을 찾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학교밖 청소년들은 사이버 공간을 손쉽게 소속감을 느낄 곳으로 선택하지만 이버 공간은 법이나 제도가 미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와 가정을 떠난 아이들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방치된다"며 "이러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다니면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교육기관이나 쉼터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선정적 정보가 범람하는 인터넷의 발달로 이들 청소년이 현실 속 폭력에도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 청소년들은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정보가 많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굉장히 많이 익숙하다"며 "이러한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현실에서도 문제를 깨닫지 못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학교 밖 청소년은 사회적 통제나 선도가 미치지 않아 이러한 노출이 더욱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A양과 B양은 현재 서울고법 형사7부(김대웅 부장판사) 심리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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