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영하 23.1도'에 바닷물도 꽁꽁…내일까지 한파 이어져
(평창=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대관령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6.7도, 체감온도는 영하 23.1도 입니다."
13일 새벽, 강원지방기상청의 한 예보관이 수화기 너머로 추위를 친절히 일러줬다.
같은 시각 모스크바의 온도는 영하 3도. 이곳 대관령보다 무려 13도나 높았다.
최강 한파로 사흘째 꽁꽁 얼어붙은 강원도, 기자는 대관령의 추위를 몸으로 느껴 취재하리라 마음먹고 이날 새벽 대관령으로 출발했다.
호기로움은 이내 큰 벽에 부딪혔다.
일출 시각을 20여분 앞둔 오전 7시 10분, 백두대간 위로 솟는 해를 찍고자 드론을 예열했지만, 혹한에 시동이 걸리지 않은 까닭이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결국 드론 띄우기를 포기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대관령 옛길 중턱의 반정 전망대에 올랐다.
기상청이 알린 이날 일출 시각은 7시 31분. 날은 밝아왔지만, 산 정상에 가려 해가 보이지 않았다.
대관령을 넘어온 바람은 면도날이 돼 언 뺨을 베고, 송곳이 돼 외투 속을 찔렀다. 해를 기다리는 1분이 1시간처럼 길었다.
영원 같던 15분을 기다려 일출을 찍고 대관령 119안전센터로 향했다.
차량 계기판의 온도계는 바깥이 영하 14도라 가리키고 있었다.
소방관들에게 한파로 접수된 피해는 없는지 물으며 "너무 춥다"고 너스레를 떨자, 이들은 "아직 진짜 추위는 오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이윽고 하나둘씩 이야기를 꺼냈다.
한 소방관은 "대원 중 몇 명이 경유차를 타는데 추위에 말썽이 생겨 결국 지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소방관은 "펌프차가 출동 갔다가 복귀할 때 배수관에 남은 물이 얼 때가 있다"며 "항상 출동 대기를 해야 해서 온풍기를 끌고 와 언 호스를 녹인다"고 얘기했다.
실제로 소방관들이 머무는 사무실 안에 설치된 난로는 긴 호스를 통해 소방차고까지 온기를 보내고 있었다.
차고 내 온도를 항상 영상으로 유지하기 위함이다.
갑자기 닥친 추위로 애를 먹는 사람은 소방관뿐만 아니었다.
횡계리에서 한우 20여마리를 키우는 신재영(80)씨는 "며칠 전 강풍이 불어 축사 문이 떨어져 나갔다"며 "소가 마실 물이 10분이면 얼어서 녹이느라 고생했다"고 말했다.
농장에 들어서자 놀란 소들이 하얀 콧김을 잔뜩 내뿜었다.
자세히 보니 입김이 얼어 소 콧잔등과 털과 입 주위 수염에 서리가 내렸다.
소들도 추위가 싫었는지 서로 몸을 부대끼며 온기를 나눴다.
한파가 찾아오자 '이때다' 싶은 이들도 있었다.
횡계리 황태덕장은 동장군을 친구 삼아 분주한 모습이었다.
덕장 주위는 명태를 싣고 온 트럭들이 바삐 움직였고, 덕장 안은 꽁꽁 언 명태 덩이를 한 마리씩 나눠 가지런히 거느라 정신없었다.
한 사내는 "기자 양반이 막걸리 한 병 없이 사진 찍으러 왔다"며 농을 걸었다.
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한파가 견디기 힘들었는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컵라면으로 추운 속을 달랬다.
이곳 사장인 최영길(55)씨는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 명태 살이 녹으면 안 돼서 추워야 덕장 운영을 시작한다"며 "12월 중순에 이 정도 추위는 대관령에서도 흔치 않다"고 말했다.
새벽부터 몸 녹일새 없이 대관령면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니 덕장에 걸린 명태처럼 몸이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강원 내륙, 산간지역보다 따뜻한 기온을 보이는 동해안도 동장군의 맹위를 피하기 어려웠다.
혹한에 바람까지 강하게 불면서 동해안 인근 구조물에는 바닷물이 얼어붙어 고드름이 열리는 풍경을 연출했다.
강릉 경포호수도 얼어붙기 시작해 청둥오리 등 겨울 철새들이 몸을 잔뜩 움츠린 채 햇볕에 옹기종기 모여 추위를 견뎠다.
남대천에는 '겨울 진객' 황새(환경부 멸종위기종 1급·천연기념물 제199호) 2마리가 나타나 부지런히 먹이를 찾았다.
기상청 관계자는 "내일도 전국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져 매우 추울 것"이라며 "그동안 전국에 영향을 준 찬 대륙 고기압이 물러가 15일에는 추위가 주춤할 것"이라고 말했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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