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타 원전 3호기…후쿠시마 사고 후 고법 원전 가동중지 첫 판결
재판부 "화산 위험성 저평가됐다"…주민들 "피폭지 히로시마서 원전 멈췄다"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법원이 대형 지진의 우려가 큰 지역에 있는 에히메(愛媛)현 이카타(伊方)원전에 대해 가동 중지를 명령했다.
13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히로시마(廣島) 고등재판소는 이날 히로시마 지역 주민 4명이 시코쿠(四國)전력 이카타 원전 3호기에 대해 제기한 가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1심 법원인 히로시마 지방재판소가 지난 3월 주민들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바 있지만, 상급법원인 히로시마 고등재판소가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이후 고등재판소(고등법원) 차원에서 원전 가동중지 명령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와 전력회사들의 원전 재가동 정책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이날 해당 원전에 대해 본안 소송이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가동 중지 기한을 내년 9월까지로 정했다. 이 원전은 현재 정기 검사를 위해 가동을 멈춘 상태인데, 이날 결정으로 내년 1월 가동을 재개하려던 계획을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게 됐다.
이카타 원전은 대형 지진이 날 가능성이 큰 난카이(南海) 트로프(해저협곡)에 위치해 있다. 난카이 트로프는 30년 이내에 규모 8~9급의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70%에 이른다는 예측이 나온 곳이다.
활화산인 구마모토(熊本)현 아소산(阿蘇山)과도 가까운 데다 활성단층으로 불리는 '중앙구조선 단층대'에서 불과 5㎞ 떨어진 곳에 있어 원전이 소재한 에히메현뿐 아니라 히로시마와 야마구치(山口) 등 인근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반(反)원전 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현재 히로시마 외에도 마쓰야마(松山), 오이타(大分), 야마구치의 법원에서도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이 각각 제기돼 있다.
법원의 이날 결정은 이 원전을 둘러싸고 제기된 가처분 신청 중 신청인 측인 주민들이 승리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마쓰야마 지방재판소의 경우 지난 7월 주민들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바 있으며, 오이타와 야마구치에서는 지방재판소가 아직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히로시마 고등재판소는 이날 판결에서 아소산이 분화할 경우 원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시코쿠전력이 과소평가를 했다고 지적하며 이 원전의 입지가 부적절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시코쿠전력이 예상하는 분석(噴石·용암 조각과 암석 파편)과 화산재의 양이 지나치게 적다"며 "화쇄류(火碎流·화산재와 화산가스가 빠르게 흘러내리는 것)가 원전에 도달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고 밝혔다.
가처분을 신청한 주민들은 시코쿠전력이 난카이 트로프 지진과 중앙구조선 단층대가 원전에 미치는 영향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부분도 재판부에게 설득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원전 재가동 정책을 펴는 데 활용하고 있는 '신(新)규제기준'이 후쿠시마원전 사고의 원인 규명이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 만들어진 까닭에 원전의 안전성 확보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고도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민주당 정권 시절인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뒤 '원전 제로'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2012년말 재집권한 자민당의 아베 정권은 원전의 안전성 등을 규제하는 '신규제기준'을 만들어 이를 통과하는 원전은 다시 가동하는 원전 재가동 정책을 펴고 있다.
이카타 원전 3호기 역시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동이 멈췄지만 신규제기준을 통과한 뒤 작년 8월 재가동을 시작했었다.
이날 판결에 대해 신청인 측 주민은 2차세계대전 중 원자폭탄의 피해를 본 히로시마에서 원전을 중지시킨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며 "72년 전 시작된 피폭의 역사를 멈추기 위해 중요한 첫걸음을 걸었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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