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형식 장편소설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있긴 하지만, 과연 내가 '나'라는 존재를 얼마나 잘 알고 이해하고 있을까요?"
김숨(43) 작가는 1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런 화두를 던졌다. 이런 질문은 최근 출간한 편지 형식의 장편소설 '너는 너로 살고 있니'(마음산책)의 주제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에 대해 이제야 서서히 알아가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사실은 잘 모르고 살아가지 않았나 싶은 거죠. 나이 마흔을 기점으로 조금 알게 된 것 같고, 또 지금도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너'라는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나'라는 존재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나를 응시하는 시간을, 나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이 소설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편지 형식이긴 하지만, 이 소설은 가상의 인물들과 나름의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다.
서울 연극판에서 오랫동안 조연으로 무대에 선 마흔네 살의 여성 화자가 경주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식물인간 '그녀'의 간병인으로 내려온다. 국립 박물관 학예사로 일하는 남편과 귀여운 아들까지 낳아 안온하고 평탄한 삶을 살아온 그녀는 11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식물인간의 삶을 살아왔지만, 죽은 듯 보이다가도 눈물을 흘리거나 짧은 분절음을 토해내는 등 살아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나는 그녀가 나와 닮았으며 서로 깊이 교감한다고 생각한다.
"식물인간인 '그녀'가 또 다른 나이기도 하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다른 두 여자가 아니라 한 여자이고, 결국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거죠."
이야기의 배경인 병원과 경주라는 지역은 이 소설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두 공간 모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예전에 단편으로 식물인간을 돌보는 간병인 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구상한 적이 있어요. 완성하진 않고 도입부문 쓰다가 묻어둔 것이 있는데, 몇 년 지나서 이 편지소설을 쓸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요. 병원의 풍경은 제 가족이 입원한 적이 있어서 오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본 장면들이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어요."
경주에는 죽은 자들의 무덤인 '릉'이 곳곳에 있다.
"'바느질하는 여자'(2015)를 쓸 때 바느질을 배우러 경주에 다녔어요. 카페에 앉아 통유리 밖으로 능들 사이에 사람들이 다니는 걸 보면서 삶과 죽음이 어우러져 있는 기묘한 풍경이랄까, 전생과 현생, 후생이 함께 있는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사가 중심이 아니라 편지처럼 쓰인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시처럼 읽힌다. 음미하고 곱씹을 만한 문장이 이어진다.
"우리는 어쩌면 날마다 얼굴을 잃어버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 거울 속을 헤매고는 하는 것인지도요." (본문 43쪽)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의 운명이 씨앗의 운명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저마다 어느 순간 허공으로 날려 어딘가에 내던져지는 것이 아닐까요." (118쪽)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스스로 치유받았다고 했다.
"쓰는 동안 즐거웠어요.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썼는데, 슬픔이 눈물이라고 한다면 뒤따라오는 게 카타르시스잖아요. 마음을 치유해주고 또 다른 감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거죠. 저 스스로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요즘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얼굴이 많이 눈에 들어와요. 그럴 때 연민과 슬픔의 감정이 생기고 그 사람과 깊이 교감하면서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책에는 신예 화가 임수진의 작품인 목판화 24점이 들어가 글과 함께 서정적으로 어우러진다.
지난 한 해만 소설집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 이어 이번 장편까지 세 권의 책을 낸 그는 그야말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작가다. 지금은 또 뭘 쓰고 있을까.
"'한 명'(2016)을 쓰긴 했지만, 위안부에 관해 더 할 얘기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쓰고 있어요. 단편 연작 형식인데 결국 장편이 될 것 같아요. 언제쯤 나올진 아직 모르겠네요."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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