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전입해 온 지 얼마 안 된 대원들이 영하 20도가 표시된 온도계를 보며 '실화냐'고 놀라고는 하지만, 지내다 보면 20도는 겨울철 일상적이고 그럭저럭 버틸만한 온도입니다."
전국이 며칠째 얼어버렸다.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오전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다. 영하 10도도 너무 추워 몸을 잔뜩 움츠리게 되는데 연천, 포천 같은 전방지역에는 '영하 22도' 같은 비현실적인 숫자로 기온이 내려간다.
빌딩 바람막이가 있는 도심에서도 1분 이상 야외에서 서 있고 싶지 않은 이날, 시베리아보다 더 춥다는 영하 20도의 최전방 경계초소 장병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14일 경기도 연천군 육군 25사단 승전대대의 한 GOP 경계초소를 찾았다.
지난밤 초소 주변 지역의 기온은 영하 21도였다. 이른 아침 해가 떴지만, 영하 15도 안팎을 기록했다.
기자가 찾은 초소는 약 5m 높이로 지어졌다. 경계 작전을 위해 주변이 탁 트인 곳 고지에 있어 칼바람이 수시로 몰아친다.
초소에는 2인 1조로 근무한다. 칸막이가 설치된 초소 내부에서 병사 한 명이 전방을 주시하고, 다른 병사는 외부에서 후방을 주시하며 혹시 월북 시도가 없는지 등을 감시한다.
군의 동의를 얻고 초소 내부에 들어가 잠시 경계병과 함께 서 있어 봤다.
내복에 시중에 나온 제품 중 가장 두꺼운 축에 속하는 패딩까지 입고 초소에 들어가 처음 든 생각은 "생각보다 따뜻하네"였다.
두껍지는 않지만, 사방에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벽이 설치돼 있고, 소형 라디에이터까지 있어 예상보다 '죽을 것 같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안도는 얼마 가지 않았다. 차가운 물에 서서히 잠기듯, 한기는 발끝부터 찾아왔다. 발가락을 움츠렸다 폈다 하며 버티자 이번에는 초소 앞쪽 총구가 나온 뚫린 부분에서 찬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가 막혀서 입으로 숨을 쉬었는데 혓바닥이 어는 듯해서 얼른 입을 다물었다.
"방한 복장을 아무리 갖춰도 역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발입니다. 일반 군화 대신 방한화를 신기는 하지만 발이 시려지는 것을 막기는 힘듭니다,"
취약한 발을 보호하기 위해 중대에서는 나무 재질로 만든 발 보호대를 설치해 병사들이 쓸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용사들은 경계가 주 임무이자 삶이다. 감시 장비 운용과 순찰조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하루에 꼬박 3시간 이상은 초소에 가만히 서서 근무해야 한다.
칼바람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방한복과 방한용품을 최대한 사용한다. 내의와 전투복을 입고 위에 방상 내피와 외피까지 입은 후 스키파카를 상·하의로 입어 마무리 한다.
많이 껴입었다고 이 상태로 나가면 동상에 걸리기 딱 좋다. 방한화, 장갑을 끼고 얼굴을 가릴 마스크를 낀다. 물론 그래도 춥다. 핫팩 2개 정도는 붙여야 한다.
지난 6월 임관해 부대에서 첫 겨울을 맞는 금재충 소위(24)는 "남쪽 지방에서 살다가 임관하고 처음 부대에서 영하 20도라고 찍힌 온도계를 보고 경악을 했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라며 "장시간 경계 근무를 하는 병사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겨울마다 추위가 반복되니 부대 운영을 위해서는 시설 방한 대책도 필수다. 물을 조금씩 흐르게 하는 낙수 조치를 하지 않으면 즉시 수도관이 얼어버린다. 야외에 노출된 관이란 관은 모두 보온재로 감싸야 한다.
워낙 추운 환경이다 보니 장병들은 강추위에 이골이 난 듯했다. 부대 관계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방한복을 '완전무장'하면 졸음이 온다는 병사도 있어 군장 검사 때 적절하게 조절하도록 지휘한다"고 설명했다.
경계 중인 초소를 찾은 장교가 병사에게 "여기 어젯밤에 온도 몇 도 찍혔나?"라고 물었다. 병사는 "영하 21도였습니다"라고 답했다. 말투와 표정이 "오늘 반찬 뭐니?", "된장찌개입니다" 처럼 일상적이었다.
이 부대 권형주 대위는 "매년 겨울 추위가 반복되기 때문에 동계가 시작하기 전에 추위에 취약한 인원이 없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병사들이 경계 작전에 어려움이 없도록 다양한 방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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